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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오경철 저, ‘편집 후기’를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8. 25. 23:08

결국 다시 사랑하는 책으로


오경철 저, ‘편집 후기’를 읽고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편집자의 일이 궁금했기 때문은 아니다. 물론 애정하고 신뢰하는 신형철의 추천사도 한몫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부제,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이 내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알았다. 약간의 판단 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그 착오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이 부제의 강세는 ‘책을 사랑하는 일’에 있지 않고 ‘결국’에 있다는 것. 둘째, ‘책을 사랑하는 일’은 ‘책 읽기를 사랑하는 일’과 다르다는 것. ‘책’은 ‘책 읽기’를 넘어서는 개념이었다. ‘책 읽기’는 ‘책’이라는 물건을 사랑하는 마지막 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책은 읽히기 전에 기획되어야 하고, 저자에 의해 쓰인 원고를 편집하는 일련의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얻어지는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책은 읽히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팔려야 하는 목적도 가진다. 책은 내용적인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책 읽는 낭만적인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책을 만드는 지극히 현실적인 행위에 대한 이야기. 즉, 독자가 아닌 편집자의 생계를 포함한 실제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 수차례 길을 벗어나 보기도 하고, 곁길로 걸어보기도 하는 등 깊은 회의와 잦은 좌절을 겪으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책 만드는 일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 (사랑의 힘이 아니면 무엇이랴!).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로 회귀하는 이야기. 그 가감 없는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편집자다. 숱한 초보 편집자들에겐 기라성 같은 존재일 것이다. 노장이라고도 쓸 수도 있겠으나 베테랑이라고 읽는 게 적합한 편집자인 것 같다. 여러 출판사를 옮겨본 경험, 출판사를 그만두고 외주로 생계를 이어간 경험, 일인출판사를 차려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다가 다시 따박 따박 월급이 나오는 출판사로 복귀한 경험. 유명 작가들의 책들을 편집했던 경험. 과연 책이 될까 싶은 책들도 책으로 만들어봤던 경험. 수십 년간 이렇게 글로 다 써내지 못한 숱한 경험들을 거치며 탄탄한 내공의 소유자가 된 저자는 이 책에서 책 만드는 일에 대해 책 만들어본 자만이 말할 수 있는 말들을 길게 써내려 간다. 언제나 어느 분야나 한 분야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의 말은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분야를 지원하는 자들, 그 분야에 막 진입한 자들, 혹은 그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자들이 자칫 가질 수 있는 오해, 편견, 환상 같은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그 분야를 제대로 알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편집자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초보 편집자로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분들이 있다면, 혹은 편집자로 일하다가 회의에 빠져있는 분들이 있다면 나는 이 책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책이라는 물건이 가지는 다층적인 의미와 그것을 만드는 일에 대한 담백한 현실적 삶을 직시하고 혹시라도 거칠지도 모르는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작은 판단 착오로 읽게 되었지만,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나도 어쩌다 보니 곧 출간될 책을 포함하면 세 권의 저서를 가지게 되는 작가인데, 이 책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편집자의 역할과 의미를 조금 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무게감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을 저자로 만들어준 출판사 대표에게 숙연해진 마음으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참 고맙습니다!


#교유서가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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