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간이라는 존재와 한계를 생각하며

C. S. 루이스 저, ‘인간 폐지’를 읽고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 캐년을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앞에 서서 비슷한 인상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엄하다, 웅장하다, 압도적이다, 등의 표현은 제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실로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자신을 개미와 같이 작은 존재로 인지하게 되는 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타나 장엄한 자연을 보고 경탄하는 여러분에게 ‘그건 자연이 장엄한 게 아니라 실은 그렇게 느끼는 당신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이 질문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입니다. 이 책은 루이스의 변증서로써 ‘순전한 기독교’의 1부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인간 본성의 법칙’, 혹은 ‘자연법’이나 ‘도덕률’이라고 부르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이고 선행적이며 범우주적인 법칙에 대해 루이스가 1943년 영국 더럼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옮겨놓은 글입니다.

객관적인 가치라는 게 존재할까요? 아니면 모든 가치는 주관적인 해석의 영역에 속하는 걸까요? 보편적인 법칙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아니면 모든 법칙은 상대적이어서 시대와 문화에 따라 정해지기 나름일까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법칙이라는 게 혹시 존재하진 않을까요? 모두 너무나 오래된 질문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정답이 존재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저는 이 부분에서는 루이스의 생각에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저 역시 객관적이고 보편적이고 절대적이고 선행적인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학습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어쨌거나, 누구나 알고 있는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우리 인간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한계랄까요?)까지도 저는 믿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 캐년은 저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판단과 무관하게 인간이란 존재에게 있어서만큼은 압도적일 정도로 장엄하고 웅장하다고 생각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건 그것들이 가진 가치를 제가 알아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해석의 차원이 아니라 일종의 경외심이 들 만큼의 경탄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의 솔직한 느낌은 존재론적인 사유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초월적인 순간의 저의 반응인 것이지요. 이성을 훌쩍 넘어서는 영역의 일인 것입니다. 

이성을 훌쩍 넘어서는 영역의 일. 루이스는 이 일을 담당하는 기관은 뇌도 아니고 장도 아닌 가슴이라고 말합니다. 뇌는 지성을, 장은 본능을 가슴은 정서를 의미합니다. 이어서 루이스는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뇌나 장이 아닌 가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서라는 것의 의미를 한낱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상 정도로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게 사람을 사람다울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역할과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루이스는 상대주의에 천착한 교육 시스템은 가슴 없는 인간을 양산해 낸다고 주장합니다. 가슴이 없으면 뇌와 장만 남게 됩니다. 뇌를 가졌기 때문에 생각은 생각대로 하고, 장을 가졌기 때문에 행동은 본능에 따라 하게 되는 기형적인 인간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생각과 행동이 연결되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서란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지성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도 하며, 본능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역할까지 담당하는 것입니다. 

루이스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자들을 마치 스스로 인간이라는 존재 밖에 있는 인간이라고 여기는, 다시 말해 인간이 아닌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가슴 없는 인간으로서 모든 가치의 절대성을 부수고 상대화시킴으로써 절대적 가치에 순종하지 않고 그것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도 (위에서 언급한 도덕률 같은 절대적 법칙을 말합니다) 바깥으로 나가서 도를 믿고 그것을 순종하는 사람들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루이스는 이런 시도를 하는 작자들의 최종 정복은 결국 인간 폐지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으로서의 특권을 버리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계속 가지고 싶어 하는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며, 이는 성취되지 못할 불가능한 바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한계도 모르고 이성이 모든 것인 것처럼 지껄이다가 행동으로 옮길 땐 자기 본능에 따라 저질러버리는 가소로운 인간들의 모습인 것이지요.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자명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어떤 것도 증명될 수 없다고. 도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그리고 도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가치가 실은 그 자체도 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도를 거부한다면 모든 가치를 거부하는 꼴이 된다고. 도를 수정할 수 있는 권위는 오로지 도 내부로부터만 생겨날 수 있다고. 도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도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도를 실천하는 사람들만이 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만일 우리가 가치라는 것을 갖고자 한다면, 실천이성의 궁극적인 평범한 진리들을 절대적 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도가 모든 가치 판단의 근원이자 유일한 원천이라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인간 폐지를 향할 뿐이라고. 

저 역시 이 견해들이 굉장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죄의식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인간의 본성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을 포함한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루이스는 이 책에서 기독교 색채를 빼고 이야기를 진행했지만, 저는 루이스가 아마도 결국엔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관계, 즉 신론과 인간론으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 캐년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을 떠올리면 아마도 제가 머릿속에 그린 장면을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도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에게 남기신 일종의 흔적, 혹은 하나님의 형상 닮은 인간이라는 존재 안에 있는 그 무엇에서 찾고자 하는 제 모습을 떠올리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루이스 읽기
1. 예기치 않은 기쁨: https://rtmodel.tistory.com/682
2. 고통의 문제: https://rtmodel.tistory.com/695
3. 헤아려 본 슬픔: https://rtmodel.tistory.com/699
4.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https://rtmodel.tistory.com/822
5. 천국과 지옥의 이혼: https://rtmodel.tistory.com/852
6. 순전한 기독교: https://rtmodel.tistory.com/911
7. 시편 사색: https://rtmodel.tistory.com/942
8. 순례자의 귀향: https://rtmodel.tistory.com/1164
9. 순전한 그리스도인 (by 김진혁): https://rtmodel.tistory.com/1176
10. 세상의 마지막 밤: https://rtmodel.tistory.com/1629
11. 침묵의 행성 밖에서: https://rtmodel.tistory.com/1633 
12. 루이스가 메리에게: https://rtmodel.tistory.com/1635
13. 페렐란드라: https://rtmodel.tistory.com/1637 
14. 개인기도: https://rtmodel.tistory.com/1653
15.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https://rtmodel.tistory.com/1658
16. 인간 폐지: https://rtmodel.tistory.com/1662

#홍성사
#김영웅의책과일상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