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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말과 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9. 4. 15:36

말과 글

들려진 말과 쓰인 글을 통해 알려진 모습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 순간, 말과 글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됩니다. 말과 글은 나를 문자로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내가 아닌 것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말과 글에 능한 자’라는 이 축복된 말이 ‘거짓과 위선에 능한 자’로 여겨지곤 할 때마다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말과 글로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거짓증폭시키는 자들은 백이면 백 자기중심적입니다. 타자를 배려하는 척할 뿐, 실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타자에게 각인시키려는 행위를 지속할 뿐입니다. 자기 객관화는 말과 글의 보이지 않는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명함과 진정성이 배제된 말과 글은 악할 뿐입니다. 타자와 자신마저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자기 객관화가 안 된 말과 글은 듣거나 읽을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사치스러운 노파의 몸에 주렁주렁 늘어진 보석들이 하나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까닭입니다. 말과 글은 듣는 이와 읽는 이 안의 숨은 보석을 발견하고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낼 때 가장 가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하는 이, 글 쓰는 이의 보석이 드러날 때에도 그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 드러내려 애쓴 게 아닙니다. 복잡한 소음이 난무하지만, 말과 글이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도 바로 이것, 즉 빛을 비추고 진실과 진리를 드러내는 역할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비추고 드러내는 역할, 그 투명하고 진정 어린 도구가 저는 말과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전제되지 않은 말은 거품과도 같아서 쉽게 휘발됩니다. 자신이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과 위선에 능해지게 됩니다. 정리되지 않은 말의 대부분은 누군가로부터 주워들은 말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인 것처럼 말하는 것. 이보다 타자와 자신을 우롱하고 배제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이 어디 또 있을까요. 그런 것들로 스스로를 우월하게 느끼는 사람 역시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단출해도 괜찮습니다. 단 한 문장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자기만의 고유한 문장들을 솔직하게 내어놓는 일. 글쓰기의 시작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말과 글에 자신의 모든 걸 담을 수는 없지만, 거기엔 자신의 일부분이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일부분이 탁하거나 가식적이라면 어떨까요. 작은 부분이라도 투명하고 진정 어린 생각과 삶의 조각들을 글로 드러낼 수 있다면, 그렇게 써진 글은 아름다운 글이라 믿습니다. 글의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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