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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세 번째 저서: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9. 5. 20:07

세 번째 저서: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출판사 대표님과 잠깐 통화했다. 책이 저자와 편집자 손을 떠나 인쇄소로 넘어갈 때의 그 복잡 미묘한 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빨리 출간되길 바라다가도 막상 인쇄가 된다고 하면 이를 어쩌나 싶어 발을 동동 굴리게 되는 이 알 수 없는 마음. 어쨌거나 마감된 원고는 인쇄소로 넘어갔다. 이제 책의 운명은 저자와 출판사의 손을 떠났다.

어쩌다 보니 벌써 세 번째 저서다. 평생 책 한 권 써볼 수 있을까 하면서 미국에서 혼자 묵묵히 읽기와 쓰기에 침잠하던 내게 어느 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분이 선율 출판사 이재원 대표님이다. 2019년 12월, 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시간을 내어 직접 차를 끌고 대전으로 아무것도 아닌 나를 만나러 오셨다. 과학과 신앙에 대한 책에 대한 기획 초안을 알려주시고 나를 저자로 초대해 주셨다. 미국에 돌아가자마자 코로나가 터졌고 곧 판데믹이 선포되었다.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겐 책을 쓸 수 있는 의외의 풍성한 시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해 말 나의 첫 저서 ‘과학자의 신앙공부’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수개월 후 세종도서에 선정되면서 2쇄를 찍게 된다. 첫 책 치고는, 그리고 기독교 출판사라는 작은 시장 치고는, 코로나 상황이라는 천재지변의 상황 치고는, 그리고 무명의 저자 치고는 선방이었다. 참 감사한 마음이었다.

두 번째 책은 신앙서적의 울타리를 벗어나보자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걸 아시고 그것을 과학과 연결시키는 상당히 도전적인 기획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분자세포생물학과 유전학을 접목시킨 모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시켰지만, 개인적으론 이 책이 첫 책 보다 더 신앙적이라는 믿음을 나는 여전히 갖고 있다. 그리스도인다움을 넘어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문학과 과학을 통해 했다고 나름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책에 비해 과학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더 전문성을 담았다. 아마추어 문학도로서도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나름대로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대한 해석을 넣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러시아 문학의 대가이자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연구의 최전선에 계신 고려대학교 석영중 교수님이 추천사를 흔쾌히 써주시고 또 이런 책을 내주어서 고맙다며 출판사 대표님과 직접 전화통화도 하신 기억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도 생물학과 문학을 접목시킨 책은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2021년 말에 이 책은 출간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잘 팔리지가 않았다. 초판조차 완판하지 못했다. 늘 마음 한편에 짐으로 남아 있다.

1년이 흘렀고 그동안 나는 뜻하지 않게 한국으로 들어왔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대표님과 ’과학자의 신앙공부‘ 후속작을 쓰자는 기획이 올초에 진행되었다. 나는 발생생물학에 대해 마침 공부를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을 쓴 저자의 세 번째 책이라서 그랬을까. 세 번째 책은 앞의 두 책이 상호보완하고 상승효과를 내어 완성도가 올라간 책이 된 것 같다는 자체 평가가 대표님과 나 사이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이 책은 신앙공부가 아니라 신앙고백이 되어 버렸다. 인간 몸의 발생, 성숙, 노화와 신앙의 발생, 성숙, 노화를 빗대며 풀어나가는, 신앙의 눈으로 본 내 몸 보고서. 하나의 세포에서 어떻게 인간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궁극적 질문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고 발생생물학의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신비다. 인간 몸의 발생도 신앙의 발생도 모두 신비다. 발생 후 성숙화 과정은 모든 인간의 다름이 발현되는 장이다. 지혜자로 성숙될 수도 있고, 꼰대로 탈성숙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손에 들고 가지 못하는 죽음이라는 시간 앞에서 적어도 꼰대로 살지는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대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리스도인을 넘어 인간으로서 범우주적인 윤리적 삶의 자세로 주어진 사명을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간직한 채 감당해 내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다.

책은 상품이기도 하다. 어떤 책이 잘 팔릴지에 대해 항상 작동하는 법칙은 없다고 한다.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이번 책은 내가 한국에서 내는 첫 책이기도 하기 때문에 조금 욕심을 내볼까 한다. 광고를 조금 적극적으로 할 수 있어서다. 물론 이 책을 읽으실 첫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북토크나 강연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생각이다. 선물도 많이 할 생각이다. 이벤트도 여러 번 진행해서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팔릴 수 있도록 애써볼 생각이다. 참고로, 앞의 두 책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책으로 인한 수입 (인세)은 모두 나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흘려보낼 작정이다. 지금까지 단 일 원도 날 위해 쓴 적이 없다. 내용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이웃사랑에 이바지하는 책이 되면 좋겠다. 관심 있으신 페친 여러분은 이 작은 사역에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 사달라는 말을 이렇게 고급지게 하다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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