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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흔적이 드러나는 삶
제행신 저, ‘지하실에서 온 편지’를 읽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교회 문화 속에서 간증을 접할 때면 늘 조심하게 됩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다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생 역전했다는 이야기는 등장인물과 배경상황만 다를 뿐 동일한 맥락으로 반복, 도배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저는 그 간증이 궁극적으로 드러내는 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마음이 불편해지곤 합니다. 물론 이런 해석이 저의 열등감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기승전 잘됨이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축복의 전부인 것 같은 뉘앙스는 기복신앙의 메시지와 다를 게 없어 보이고, 간증이 그것을 더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간증에서 하나님 대신 어떤 부적이라든지 용한 점쟁이의 말이 들어가더라도 간증의 본질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기복신앙이라는 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과 상관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포장지일 뿐이니까요.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에도 저는 비슷한 자세가 됩니다. 인생 역전 이야기는 성공 신화나 자기 계발서로 쉽게 둔갑하는 반면, 어려움을 통과한 사람의 이야기는 종종 자기 연민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자기애에 더 깊이 천착하는 글이 됩니다. 이런 글에서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가려지고 간증자만 남게 됩니다. 인간의 자기 중심성은 교만으로 쉽게 나타나 강자에게 가서는 오만함으로, 약자에게 가서는 열등감으로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랑이나 자기 연민이나 본질은 같습니다. 교만의 두 얼굴인 것이지요. 나아가 저는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의 흔적이라고도 생각한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근원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연민의 양 갈래로 난 교만의 늪에 빠지지 않는 간증을 만난다는 건 축복이라 믿습니다. 간증자는 사라지고 마침내 하나님이 드러나는 글을 읽게 된다는 건 정말 흔하지 않은 축복일 것입니다. 저에게는 제행신 작가가 쓴 ‘지하실에서 온 편지‘가 바로 그런 책 중 하나였습니다. 얼마 전 작가님을 직접 대면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 책 속의 글들에서 저는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과 글과 삶이 다르지 않은 작가의 글은 언제나 신뢰가 갑니다. 자기 객관화를 전제로 한 깊은 성찰과 탁월한 통찰이 묻어나는 글은 읽는 이에게는 깨물면 입 주위가 흥건히 젖을 정도의 단 열매와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힘과 위로가 됩니다.
저자는 광야를 거쳐왔고 지금도 거치고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네 아이의 엄마입니다. 미국에서도 서울에서도 목포에서도 결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라하고 초라해서 간신히 버티며 사는 삶을 살아갈 때도 있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사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여섯 식구가 살아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서의 어려움이 적힌 부분에선 저의 긴장했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저 시절을 버텼을까 싶었습니다. 궁금해서 책장을 빠르게 넘기다가도, 아무래도 예상한 대로 일이 진행될 것 같아 한동안 책을 덮고 멈춰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글에서 저자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궁극의 안도라고 할까요? 아, 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저자와 저자의 가족에겐 죽음이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믿음이 있구나, 하며 저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2부에 해당하는 ‘가족의 시간에서 다시 가족으로’를 이루는 서른 편이 넘는 글에서 저는 제가 미국에서 통과했던 광야의 시절과 겹쳐져서 공감과 함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가족을 향한, 특히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과 시선이 저의 마음과 시선과 너무 닮아 있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공통분모는 하나님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인물과 배경이 달라도 한 분 하나님이 동일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방향 맞춘 자라면 당연히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자가 지하실에서 퍼 올린 이야기들은 곧 저만의 지하실에서 퍼 올린 이야기와도 같고, 나아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자는 현재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원초적인 기적들이 동반되는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감사한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흔적이 드러나는 저자와 저자의 가족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세움북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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