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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인간의 속성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뽈준꼬프’를 읽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의 캐릭터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히 낯선 인물로 다가왔다가 어느 순간 친근하고 익숙한 내 분신으로 자리매김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깊숙한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가끔은 소름도 끼친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그 모습이 나일 리가 없다고 극구 부인하는 시기도 종종 도래하는데, 이런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다 보면 정신분열이란 게 어떤 것인지 왠지 알아버린 것 같은 상태까지 나아가게 된다. 타자화된 인물의 동기화, 결코 합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이어지는 분열과 붕괴, 그리고 결국 마주하게 되는 막다른 골목 (도스토옙스키의 후기작들에서는 이 막다른 골목에 서광이 비친다. 철저히 외부로부터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구원이다). 이것이 바로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묘미 중 하나이자, ‘도스토옙스키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많아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라는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관찰을 성찰로, 성찰을 통찰로 이끌어내는 탁월함을 진지하게 맛보고 싶다면 당장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혹은 책장 깊숙이 꽂혀 있는) 도스토옙스키를 들라. 그리고 읽으라. 몰아와 탈아를 경험하면서 나와 타자와 인간을 보다 깊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열릴 것이다. 

뽈준꼬프에게선 마까르도 보이고 골랴드낀도 보인다. 그러나 뽈준꼬프는 마까르도 골랴드낀도 아니다. 뽈준꼬프는 뽈준꼬프일 뿐이다. 이렇게 인물들이 중첩되는 현상은 도스토옙스키를 읽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이다. 미래의 도스토옙스키 독자들도 분명히 겪게 될. 도스토옙스키의 많은 작품 속엔 동일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뽈준꼬프’ 같은 단편소설 속 주인공조차 고유성을 띤다. 현재 내 머릿속엔 도스토옙스키가 창조해 낸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산재되어 있다. 재미난 것은 모두가 다르면서도 어떤 공통된 속성을 띤다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인간이라는 이유이리라. 작품을 읽는 나도 인간이기에, 인간이라는 이유는 작가나 작품 속 등장인물이나 독자가 모두 하나로 모일 수 있는 궁극의 공통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건 결국 인간을 읽는 것이다. 

공통된 인간의 속성 중에서도 나는 도스토옙스키가 집요하게 파고들어 파헤치는 속성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속성의 진하기에 따라 등장인물들을 일렬로 줄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언젠간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 속 주요 등장인물들을 한데 모아 이러한 관점으로 비교대조하며 책 한 권을 써도 좋겠다). 그 속성은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가기’라고 할 수 있을 그 무엇인데, 이 작품 속에서 뽈준꼬프는 스스로를 그 누구보다도 더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어쩔!). 여기서 ‘우습다’라는 표현은 유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조롱’이나 ‘수치’ 혹은 ‘가소로움’이라는 단어를 저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표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뽈준꼬프를 시기 질투하는 악한 타자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낼 뿐 아니라 증폭까지 시킨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뽈준꼬프는 직장을 잃게 된다. 

‘설마’ 했던 마음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역시나’ 그 일이 수순대로 벌어지고 나면 ‘이를 어쩌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허탈함에 책을 쉽게 놓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묻게 된다. ‘왜 뽈준꼬프는 저런 걸까?’, ‘무엇이 그를 저렇게 유도한 걸까?’ 하고 말이다. 무엇이든 결과를 보면 원인이 궁금해지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처사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언제나 그렇지만,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원인은 증발되고 없다. 허탈한 결과와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품을 다시 읽는 것뿐인데, 그래봤자 또다시 마주하는 건 사건의 결과로 치닫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다가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나 사건의 기원과 발생과정을 따져 묻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는 원인 따윈 관심도 없어 보이니까. 한편으로 나는 이를 다행이라 여긴다. 도스토옙스키가 프로이트가 아니라서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 현실도 마찬가지 아닌가. 언제나 이미 벌어진 결과와 현상만 있을 뿐 그것에 대한 원인은 해석의 영역 아니던가. 

뽈준꼬프의 장난 아닌 장난의 의미를 하필 그날이 4월 1일 만우절이라는 이유로 희석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우절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뽈준꼬프는 같은 일을 저질렀으리라고 보는 편이 어쩌면 도스토옙스키의 의도 (만약 의도란 게 있었다면)에 조금 더 충실한, 혹은 도스토옙스키스러운 해석이 아닐까 싶다. 만우절은 원인이 아니라 그저 우연일 뿐이라는 해석이 나는 더 마음에 든다. 

일이 잘 풀리다가도 막히고, 막히다가도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다시 잘 풀리는 게 우리의 현실 속 일상이다. 개연성 따윈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소설에서나 찾을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보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다른 작가들의 소설과 차이를 내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너무 현실 같아서, 너무 날 것 그대로라서. 그래서 우린 철저한 낯섦 속에서 익숙한 친근함을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아, 이런 이율배반성이라니. 도스토옙스키를 읽을 이유는 정말 차고도 넘친다. 

* 도스토옙스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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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1.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690
2.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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