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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전복적인 저항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1. 13. 18:54

전복적인 저항

관찰에서 성찰로, 성찰에서 통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나는 삼찰이라고 부른다.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감지하면 인간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경험이 축적되고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기며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결론은 다른 일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어 좀 더 종합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게 해 주며, 미래를 예측하거나 어떤 일을 예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대부분 본능에 따른다. 생존본능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나는 현대인들에게도 이렇게 생존본능에 충실한 경우를 목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 가도를 달리는 눈먼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들이 특히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높이 더 위로,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앞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만 골몰하는 그들도 언제나 삼찰을 거친다.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라는 점이다. 쉴 새 없이 지속되는 자기자랑의 무한반복. 가끔 그들이 드러내는 성찰의 모습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나도 성찰하는 사람이란 걸 드러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야 구색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빈틈을 가진 것처럼 보여야 완벽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아는 영리함이다, 교활함이다.

배움은 자기 발전을 유도한다. 그러나 배움이 자기 발전만 유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 동물과 다름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란 우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객관화를 이루지 못한 채 높은 곳을 달려봐야 내 눈엔 본능적인 인간일 뿐이다. 인간다움은 그런 본능에 저항하는 모습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 저항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전복적인 저항. 익명성이 주는 안전함에 만족하지 않고 정의와 공의를 위한 삶의 태도. 세상 속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오늘을 살면서 여전히 부끄러운 이유도 바로 이런 모습이 내게서 희미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떳떳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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