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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깊은 독서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2. 1. 22:48

깊은 독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파스칼 메르시어의 장편소설 ‘언어의 무게’를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다. 장편일수록 앞부분은 일부러 천천히 읽는다. 뿌리를 견고히 내린다고나 할까, 아니면 베이스캠프를 친다고나 할까. 앞으로 수백 페이지라는 대양을 건너기 위해선 출발지점이 어딘지 명확히 알아야 하고, 그래야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중해서 읽다 보면 속도는 언젠간 나게 되어 있다. 처음부터 서두르다 보면 모든 걸 놓치기 마련이며, 그 어떤 두꺼운 책도 읽어내지 못하게 될뿐더러, 아예 그런 책은 앞으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벽돌책 깨기의 나름대로의 노하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말 별 거 아니지만 말이다.



아내와 아들이 늦게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두 시간 정도 집에 혼자 있었다. 이때다 하고 책을 읽었다. 천천히 읽느라 100 페이지 채 읽지 못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제대로 독서를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작가의 글이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 들려지는 듯한 이 기분. 책에 몰입할 때 내가 주로 겪는 경험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만족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제대로 독서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일지도 모른다. 적은 분량을 읽어도 작가와 교감을 하면서 책 속에 빠져드는 짧은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독서 시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읽게 되면 맛있는 음식을 아끼면서 먹을 때처럼 어떤 깊은 맛이 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문장들을 메모에 남긴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나중에 내 문체와 어우러지면서 나의 글쓰기에 발전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두 시간 동안 77 페이지를 읽으며 열 문장이 넘는 메모를 남겼다. 마치 작가가 불러주는 문장들을 받아쓴 것 같은 기분이다. 이 묘한 느낌. 아, 매일 이런 식으로 독서를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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