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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1. 23. 19:31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우리를 깨우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독서 경력이 5년이 넘은 지인이 읽는 책들을 살펴본 적이 있다. 평균 한 달에 다섯 권 정도 읽는다고 했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기에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직접 가방을 열어 가장 최근에 구입한 책이라며 보여주었다. 자기 계발서와 연예인들이 쓴 에세이, 그리고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으면 한두 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대답 안에 도끼는 없었다. 이유식과 죽과 미음이 있을 뿐이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그에게 있어 독서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하고 내내 나는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들은 카프카의 말로 회귀하며 내 생각은 끝을 맺었다. 

재미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일차적인 독서의 재료다. 현재의 내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 큰 어른이 여전히 이유식을 먹으면 곤란하다. 물론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먹어도 된다. 그러나 먹어도 된다고 해서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성장에 맞추어 음식도 발전해야 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일차적인 독서에서 이차적인 독서로 나아가야 한다. 지경을 넓히는 독서 말이다. 

지경을 넓히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재 나의 지경이 좁디좁다는 사실을 볼 줄 알고 인정할 것. 다른 하나는 그것을 부수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것. 도끼가 필요한 것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알을 깨고 나와야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차적인 독서를 필요 이상으로 지속하고 있는 사람은 셋 중 하나다. 비겁하거나, 꼰대이거나, 혹은 비겁한 꼰대이거나. 이런 작자들은 가르치려 든다. 자신의 독서 경력을 훈장으로 쉽게 여긴다. 차라리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법한 사람이 된다. 책 한 권 읽고 떠드는 자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권은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일차적인 독서를 말한다. 

도끼를 들자. 도전이 되고, 어렵게 느껴지고, 나 자신이 하염없이 작아 보이게 만들고, 과연 내가 저걸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드는 책을 들자. 한꺼번에 큰 도약을 감행하면 다리가 찢어질 수도 있으니 유경험자에게 겸손히 조언을 구하고 나 자신에게 맞는 책을 손에 들자. 그리고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좋으니 꾸준히 읽어나가 보자. 이해가 쉽게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속해 보자. 이해하려고 이것저것 방법을 써보자. 공부라는 걸 처음으로 해보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 낭비라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어깨 위의 작은 악마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자. 새 창조를 위한 파괴는 상처를 내기 마련이고 아프기 마련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자. 버틴 만큼, 견딘 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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