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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무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2. 5. 17:14

무게

나에겐 밤에 읽는 책이 있고, 시간에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언어의 무게'는 전자에 해당된다.

어제 읽은 부분에서 작품 속 화자는 이런 사람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언어와 함께 보내리라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은 남자’

언어의 무게가 느껴졌다. 한 삶에 침투하여 그 삶을 지배한 언어의 힘을 느꼈다. 언어의 폭력성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언어에 대한 사랑과 절박함과 애틋함을 느꼈다.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마지막 날에 무엇과 함께 보내고 싶은가?

세상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같고 그것이 직업이 되면 좋을 것이다. 현실에선 괴리가 있고 자주 다르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로, 잘하는 일이 더 이상 잘하지 못하는 일로 바뀌기도 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넣고 싶다. 바로 ‘해야만 하는 일’ 혹은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일’이다.

작품 속 화자에게 있어 하고 싶은 일은 지중해에 맞닿은 나라의 모든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잘하는 일은 언어를 빨리 배우는 것이었다. 그의 직업은 번역가였다. 그의 아내는 언어에 능통한 출판사 사장의 딸이었다. 내 이목을 사로잡은 건, 그가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자 잘하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언어’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평생 직업이었다.

직업이 생물학자인 나는 과연 마지막 날에 생물학과 함께 보내고 싶을까? 아무래도 아닐 것이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잘하는 일도 생물학 연구였고, 지금도 유효하다. 그런데 난 뭐가 잘못된 걸까? 왜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일’과 다른 걸까? 직업은 직업일 뿐 생물학은 내 삶을 지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어제 읽은 저 문장에 꽂힌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작품 속 화자처럼 마지막 날에 함께 하고 싶은 건 생물학이 아니라 언어다. 언어라기보다는 글이라고 해야 나에겐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도 무언가를 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모습으로 썩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읽고 쓰는 삶이 나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하고 싶어 했고 잘하기도 하는 생물학 연구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일상의 시간들을 가장 많이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연구는 내 일상에 스며들지 못한 게다. 내 영혼을 지배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피만 컸을 뿐 내 삶에 있어서의 무게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은 무엇에, 혹은 어떤 일에 무게를 느끼는가? 어떤 것이 당신의 인생을 지배할 만큼 큰 무게를 지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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