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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공간과 시간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2. 7. 17:59

공간과 시간

낯선 공간에서 허우적거릴 때 유일하게 위로가 되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었다. 유난히 느리게 가는 시간을 느끼며 나는 그곳의 낯선 대기를 흡입했다. 마치 흐르는 시간에 기대기만 하면 그 공간이 금세 익숙해지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절박했던 것 같다. 지금도 종종 눈을 감으면 불안함이 느껴질 정도로 낯선 공간이 떠오른다. 그 공간은 모든 게 고장 난 텔레비전처럼 정지되어 있다. 그 적막 가운데 어딘선가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 생각의 소리도 들린다. 어쩌면 맥박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상당히 긴장한 상태다. 고립되었다는,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누구라도 내 눈을 보면 겁에 질렸으나 대범한 척하고 있는 위선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놀랍고도 이해할 수 없는 점 한 가지는 이상하게도 그런 공간은 현재라는 시간 속으로 시시때때로 침투하여 나를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엔 모든 게 다 정상적으로 움직이는데 나만 정지 상태가 된다. 낯선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던 시간이 익숙한 공간에선 유일하게 정지된 시간이 된다. 이것이 과거의 기억으로 빠져드는 순간의 기작이다. 그럴 때마다 현재의 일부분은 과거의 연장선에 놓이게 되고, 나는 한참이나 뒤에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다시 움직이는 시간 속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때론 수십 시간이 단 몇 초의 시간 안에 흐르게 된다. 공간은 시간을 간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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