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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거품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1. 17. 15:04


거품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코엑스에 위치한 별마당 도서관을 처음 방문했다. 이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책장들이 한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이름은 도서관이지만 나는 오늘 방문 전까진 서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안내 데스크에 보란 듯이 쓰여 있었다. 여긴 서점이 아닌 도서관이라고, 책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압도되는 책장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장에 꽂힌 대부분의 책들, 특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 책들은 실제 책이 아니라는 것. 책 표지를 인쇄하여 빈 박스를 감싼 듯한 물건 같았다. 책처럼 보이지만 책이 아닌 것들. 아니나 다를까. 진열된 많은 책들 중 책 앞면이 중복되는 것들도 많았다.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진열이었던 것이다. 속은 기분이었다. 나를 압도시켰던 건 책이 아니라 책 표지만 덧입은 박스들이었기 때문이다.

공간을 빙 둘러가며 2층까지 많은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 앉은 많은 사람들 중 정작 책을 읽는 이는 열 명 중 한 명 꼴이었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도서관이 아니라 휴식 공간일 뿐이었다.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책 표지를 구경하는 곳이었다.

물론 별마당 도서관을 이용하여 책을 빌리고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에 크게 보인 건 거품이었다. 읽히기 위한 게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책들을 보며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책은 그저 장식용으로 전락한 듯해서 우울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서관이 클 필요는 없다. 특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작은 공간이라도, 적은 수의 책이 진열되어 있더라도 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책 읽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길 원한다. 스마트폰의 힘을 이겨내고 책을 손에 들고 읽으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과연 나는 죽기 전까지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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