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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쫓기는 삶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5. 9. 09:20

쫓기는 삶

쫓기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무엇인가에 쫓기며 산다.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여전히 누군가에겐 바쁜 게 자랑일 수도 있다. 쫓기는 삶에 스스로 우쭐해하며, 마치 자기가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라도 속한 것처럼 특권 의식에 절어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러한 삶이 모든 일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이유가 되어주진 않는다. 그래선 안 된다. 

물론 일이 많아지면 우선순위를 선정하고 그 일들에 시간을 배분하여 효율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쫓겨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살려고 애쓴다. 이게 누군가에겐 고집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무너지면 삶 전체가 붕괴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삶이 붕괴된다는 말은 단순히 경제적 파산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보이는 것이 무너지려면 그 이전에 보이지 않는 게 먼저 무너지는 법이다. 내적인 파산은 언제나 외적인 파산에 선행한다. 삶을 쫓거나 삶에 쫓기거나 우선순위의 일보다 더 우선시되어야만 하는 것은 ‘지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어떤 샛길이 보이더라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인간다운 혹은 사람다운 것들, 그리고 그것들을 지키는 일들. 이것은 내가 가진 기독교라는 틀 안에만 갇힌 게 아니다 (물론 기독교인이라 하면서도 이게 안 되는 자들이 부지기수이지만… 인간이 안 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에게 모자란 건 기도가 아니다. 상식이다).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인간임을 사람임을 잊으면 안 된다. 양심이라 하는 것, 정의, 공감, 배려, 경청, 존중 등의 덕목들은 학습이 아닌,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아는 것들에 속한다. 상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부디 이런 것들만이라도 지켜지면 좋겠다. 어떤 유익을 쫓아 (이럴 때 늘 우리를 속이는 말은 “이때가 두 번 더시 오지 않을 기회야”라는 것이다) 가기 이전에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고 무시해야 한다면, 그래서 우선순위가 바뀌고 내적인 질서기 붕괴된다면, 그리하여 얻은 이익은 우리를 행복이나 참 만족으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가시적인 돈을 손에 쥘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아주 잠깐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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