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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땡볕을 걷다가 풍성한 가지가 드리운 그늘 아래로 들어서면 동공이 확장되면서 비로소 눈이 열린다. 저 멀리서 어둡게만 보였던 숲 속 세상이 보란 듯이 내 앞에 펼쳐진다. 어떤 표현이 가장 적당할까 하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층층의 많은 가지들 덕분에 옅어진 햇살은 싱그럽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정확한 단어는 정확한 경험에서 우러난다. 책을 많이 읽어도 직접 겪어내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텍스트 읽기에 멈추지 말고 자연을 읽고 사람을 읽고 세상을 읽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텍스트에 힘을 부여하는 방법이고, 부여된 텍스트를 마침내 온전히 읽어내는 방법이며, 텍스트를 완성하는 방법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힘은 책상에서 쓰인 텍스트가 아닌 책상 밖에서 완성된 텍스트인 것이다.
그러므로 느리게 읽을 필요가 있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타자의 글에 담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고 땀의 흔적을 냄새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느리게 읽는 것은 때론 그 글을 쓴 작가에 대한 독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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