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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부채감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7. 3. 21:42

부채감

작가라면 늘 마음 한 편에 부채감을 안고 산다. 비단 청탁받은 글의 마감일만이 아니다. 스스로 부과한 글쓰기에 대한 무언의 압박은 작가에겐 평생의 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짐이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라는 정체성을, 그리고 작가로 살아있음을 말해주는 지표 중 지표라는 생각이다. 작가의 부채감은 그러므로 작가를 짓누르기도 하고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생명력이라는 표현을 조금 더 세분화하여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정적인 의미의 '숨 쉬고 있음'과 상대적으로 동적인 의미의 '성장하고 있음'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이 두 가지 생명력을 불어넣는 외부의 힘을 각각 수동적인 압박과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압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지향하는 생명력은 두말하면 잔소리이겠지만 후자에 속한다. 말하자면 나는 능동적이고 압박을 스스로에게 부과하여 자발적인 부채감을 느끼고 그 부채감에서 해방되는 건설적인 애씀을 통하여 성장을 도모하는 작가이고 싶다는 것이다.  

'글쓰다짓다'라는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 함께 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생 역할을 하는 사람이든, 학생 역할을 하는 사람이든 모두 함께 같은 주제로 같은 조건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내가 선생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나는 애초부터 가르치려는 마음은 가져본 적 없었기 때문에 같은 압박을 느끼고 같은 숙제를 해 나감으로써 교실 안의 선생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함께 뛰는 리더 정도의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과하여 지속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다른 글쓰기 모임과 차별화된 방식인지는 비교해보지 않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8개월 이상 지속해 온 결과 적당한 긴장감과 적당한 현장감, 그리고 적당한 가르침과 배움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이를 적당한 부채감이라 하자) 훌륭한 시스템이라고 나는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부디 이 마음이 전달되어 모임 가족들이 이 모임을 통해 다른 글쓰기 모임과 다른 차별화된 도움을 받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발적인 결핍, 자발적인 불편함, 자발적인 부채감을 끌어안고 성실하게 지속하는 것밖에 없다는 게 내 지론인데, 이것도 마음먹는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이조차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할 수 있을 때를 알고 해 내는 것. 지혜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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