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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저자, 책, 글쓰기
작가로 살아가지만 작가가 내 직업은 아니다. 작가는 내 일상이자 삶이다.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좀 쉰다고 해서 잘릴 위험은 없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생계에 아무 지장도 없다. 더구나 글쓰기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다. 잘 쓴다고 누가 보상해주지도 않고, 못 쓴다고 해서 누가 혼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일상이 금세 건조해지고 삶이 덜컹대기 시작하며 급기야 멈추게 된다. 지난 십 년간 수차례 경험한 바다. 내게 글쓰기는 심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혈관 정도의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혈류 공급이 멈추면 모든 세포가 시들어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듯이, 글쓰기를 멈추면 내 이성과 감성, 생각과 마음이 힘을 잃고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된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5년 전부터는 작가만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만남의 축복으로 저자로도 살아가게 되어 삶이 좀 더 풍성해졌다. 2020년 말에 첫 책을 출간했고, 2021년에 두 번째 책, 2023년에 세 번째 책, 2024년에 네 번째 책의 저자가 되었다. 2022년을 빼면 매년 한 권씩 쓴 것인데, 그해 번역서 한 권이 출간되었으니 해마다 내 이름이 새겨진 한 권의 책이 출간된 셈이다. 이 기세는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2025년 말에는 브릭에서 연재했던, 나의 대학생 시절과 대학원생 시절을 허구를 동원하여 소설화시킨 팩션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가제)’가 출간될 예정이다. 어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상반기에는 밀린 책들 때문에 7월부터 작업을 시작하기로 미리 얘기가 되었었는데, 어제가 7월 1일이었다. 정확한 날짜에 연락이 온 것이다. 이로써 종교, 과학 분야만이 아니라 문학 영역에서도 저자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치열하게 더울 올여름이 끝날 즈음에는 책이 출간될 듯한데, 이 책의 경우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쓴 게 아니라 순전히 나의 상상력과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들의 모음이라 편집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출판사에서는 분량을 좀 손 보고 문장들을 다듬으며 배치도 달리하면 될 것 같다고 했는데, 나는 어떻게 되든 별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드라마로 각색해도 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지금은 그저 이렇게 쉽게 쓴 글들이 책으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에게 읽히게 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에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가제)’에 관심을 가지고 출간 계획을 품은 출판사를 만나면서 긍정적인 대화가 오갔다. 다행히 편집자께서 상품성보다는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었다. 내가 바라던 편집자 스타일이어서 나는 이번에도 복이 굴러들어 왔다고 믿고 있다. 사람의 만남은, 특히 저자와 편집자와의 만남은 축복 중 축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고의 중심 메시지나 흐름을 그대로 살리되 독서모임과 함께 했던 부분을 조금 더 현장감 있게 꾸미고 다듬기로 했다. 독서모임에도 직접 방문하시겠다고 하셨고,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하면서 책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역시 책은 저자가 쓰는 게 아니었다. 편집자와의 소통이 좋은 책을 만든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이 원고가 수정, 퇴고되어 출간되는 시점은 아마도 올해 말이거나 내년 초 즈음이 될 것이다. 내게는 종교, 과학, 문학 영역만이 아니라 인문학 영역에서도 저자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참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의 연속이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직업이 아니라 일상이자 삶이라서 더욱 즐거운 것 같다. 내 인생의 후반전이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역시 내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성인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뜻밖의 사건, 상황들을 맞닥뜨리는 순간들 자체가 즐겁다. 올해도 절반이 지났다. 후반기에는 두 책의 수정, 편집과정을 충분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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