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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경험, 그리고 겸손
일반적으로 지식과 경험이 적은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 성숙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 사람이 신앙인이라면 좀 더 성화된 사람일 확률이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성숙과 성화도 여전히 교만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교만은 성숙과 성화와 반비례해야 할 것 같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그러한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선 가장 측근이 배신자일 때가 많은 것처럼 성숙과 성화를 오래 거쳐온 사람 중에 오히려 교만한 사람이 의외로 많은 현상을 나는 살면서 여러 차례 목도했다. 왜 그런 걸까?
백지상태에서는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성악설이니 원죄론이니 하는 가설이나 교리로 소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지상태는 자기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이 무지는 백지상태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즉 지식과 경험을 쌓지 못했다고 해서 자기중심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기중심적이다.
다만 지식과 경험을 쌓으며 성장과 성숙을 거치게 되면 인간은 자기 객관화 과정도 점점 더 많이 거치게 되는데, 그제야 인간은 자기가 자기중심적인 존재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면에서는 지식과 경험이 인간을 교만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겸손이라는 단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글 맨 앞 문장도 이런 맥락에서 쓴 것이다.
그러나 지식과 경험으로 인해 얻는 성장과 성숙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우린 자꾸 잊는다. 자기 중심성과 교만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갖게 되는 Default 상태이지만, 자기 객관화와 겸손은 끊임없는 노력으로도 결코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나는 인간의 본성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헤세와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여러 고전문학 작가들이나 여러 성경 기자들의 목소리도 이를 뒷받침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보다 많이 아는 엘리트층이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사실을 우린 반복된 역사로 알고 있다. 아마 그렇게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지식과 경험을 쌓으며 자기 객관화 과정을 거치고 자기 자신의 객관적 좌표와 상태를 가늠하는 단계를 분명히 거쳤을 것이다. 타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가지게 되면서 무엇이 교만이고 무엇이 겸손인지 인지하는 단계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기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탐스럽고 고유하며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이라 여기고는 그것을 발현시켜 무엇인가를 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의도가 악하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름 세상을 변혁시키고 더 좋게 만들고 싶은 선한(?)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에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게 된다.
어느 정도 지식과 경험으로 성장과 성숙을 거친 사람들이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백치 상태에서 벗아난 것 자체도 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누군가의 은혜일지 모르고 그것이 구원의 첫걸음이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아무리 성장과 성숙을 거친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월감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애쓸 것. 만약 이 사람이 신앙인이라면 매일 하나님 앞에 설 것. 하나님 앞에서 물을 것.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나는 하나님이 아니야”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
겸손한 사람은 없다. 다만 겸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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