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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김영하 저, ‘여행의 이유’를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7. 25. 16:55

 

 

여행과 사람.


김영하 저, ‘여행의 이유’를 읽고.


이 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김영하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토종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소설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이력을 가진 작가는 아직 소수에 불과한데, 김영하는 그중 하나다. 그럼에도 나는 여태껏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고전문학 읽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우선순위에서 밀어두고 있었다. 궁색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의 작품도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독서모임 9월 도서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이 책을 일부러 구입하여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독서모임이 선사하는 다양성의 향연과 그에 따른 암묵적인 압박을 즐기기로 이미 오래 전에 결정한 나는 며칠 전 이 책을 구입했고 책을 통해 작가 김영하와의 첫 대면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출퇴근 길을 오갈 때도 일부러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몇 개 들었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 등으로 전달되는, 텍스트로는 좀처럼 파악하기 어려운 그의 모습을, 책만 읽으면 혹시나 생길지도 모를 괜한 오해 없이 사실적으로 알고 싶었다. 글이란 종종 가면 역할에 그칠 때가 많고, 글쓴이를 그가 쓴 가면을 통한 인격, 즉 그가 선정한 하나의 페르소나로서만 알게 되는 건 그닥 유쾌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다면 이런 작업은 차후에 진행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산문집은 아무래도 저자와의 만남을 환상 속에서 시작하는 것보단 현실에서 시작하는 게 더 낫다. 나름대로 이런 규칙을 가진 나는 김영하라는 사람을 동영상을 통해 먼저 조금이나마 이해한 후 그가 쓴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 내게 처음 다가온 그는 어쩔 수 없는 작가였다. 그리고 그의 글은 의심할 여지 없는 작가의 글이었다. 때론 현미경과 같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때론 나이를 지긋이 먹고 이런저런 인생 경험을 다 해본 어른의 지혜로, 또 때론 나와 조금도 다를 것 없고 친근한 한 인간으로서 그는 타자와 세상, 그리고 자신을 관찰하고 성찰하고 숙성시킨 후 그 결과를 이 책 ‘여행의 이유’를 통해 글로 내뱉았다.


책 제목에 ‘여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여행 경험담이나 노하우, 또는 올 컬러 사진으로 도배한 여행 답사 기록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는 달랑 단 하나의 사진이 소개되는데, 그것마저도 그의 여행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구 사진이다. 심지어 그가 찍은 것도 아니다. 나사에서 제공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에서 찍은 사진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여행 사진 하나 없는 여행에 관한 책이다. 이 점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차별화 전략일 수도 있고 상상하기 힘든 어떤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의도된 결과일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 ‘여행의 이유’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한 여행이나 여행 관련 정보가 아니다. 오히려 김영하라는 사람과 그의 타자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는 여행 다녀 오기 전의 김영하와 다녀 온 후의 김영하가 있다. 여전히 여행 중일 수도 있고 일상일 수도 있는 기묘한 이중적인 의미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한 사람 김영하가 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여행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 여행은 가도 결국 남는 건 사람이다.


여행은 그저 사람을 있게 한,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한, 마치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묻고 고뇌하는 유일한 존재자 (현존재)로서의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하이데거는 여행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이 책을 읽었고, 그렇게 김영하를 만났다. 그의 시선에서 많은 공감도 했고, 여러 에피소드나 그의 남다른 관찰과 통찰에서 소소한 감동은 물론, 여전히 답이 없는 질문과 고민들도 떠안게 되었다. 


여행의 이유? 나는 답을 잘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한 사람을 알고 그 사람의 시선을 따라 그 뒤에 펼쳐진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낯섦 가운데 던져진 채로 역설적인 자유와 안도감을 느끼고, 연대와 환대를 경험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된 삶을 인간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 어쩌면 여행의 이유는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라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성의 없는 대답을 나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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