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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잊고 있던 "행복"할 권리

강남순 저,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나를 알고 타자를 알고 세상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가꾸기 위해서 필요한 건 용기다. 그 용기가 발휘된 행복을 저자는, 자크 데리다의 방식을 따라, 인용부호 속에 넣은 "행복"이라 부른다. 행복과 "행복". 전자가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무감각해질 정도로 상투적이고 진부한 의미를 갖는다면, 후자는 그 상투성을 넘어 재개념화 되고 재해석된 진정성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할 건 행복이 아니라 "행복"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저자가 전작들을 통해 줄곧 이야기해 온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삶이다. 타자의 감옥에 갇혀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가는 삶이 아닌 비판적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고, 낮꿈을 꾸며, 한편으로는 (on the one hand) 한계 상황 앞에서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히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on the other hand) 바로 그 한계로 인한 좌절과 절망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삶의 의미를 재인식하고 '나로 살아있음'의 소중함과 '지금, 여기'의 소중함, 그리고 지금 내게 주어진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는 실존적 자각과 그에 따른 실천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나와 타자와 세상과 함께 마침내 치열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내는 삶이다.  

오랜만에 저자의 글을 책으로 읽었다. 언제나 한결같지만 결코 똑같지 않고, 너무 당연하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으며, 항상 도전이 되고 위로가 되며 희망이 생기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잠시 행복한 회상에 잠길 수 있었다. 저자의 철학과 글쓰기에 매료되어 그의 전작 읽기를 시도했던 시절이 떠올랐고, 페이스북으로 저자의 포스팅을 기다리며 읽고 또 읽고 가슴속에 담아두던 시절도 떠올랐으며, 엘에이에서 오프라인 만남으로까지 이어져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포옹까지 하던 순간들도 함께 떠올랐다. 내 얼굴엔 미소가 아닌 "미소"가 지어졌다. 인용부호 속의 미소, 곧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의 참 미소였다.  

코로나 팬데믹은 내 삶에서도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직장 일만이 아니라 가족 문제, 신분 문제 등이 겹치면서 나는 2022년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끊어진 수많은 소중한 것들 가운데 저자의 전작 읽기 중단도 있었다. 아쉬운 일이었다. 이번 책을 시작으로 그동안 끊어졌던 길을 재건해 볼 생각이다. 그 길은 한편으로는 다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이전과 같은 길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달라진 나, 달라진 저자, 그리고 달라진 시대와 문화로 인해 분명 다른 길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건 진정성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나, 진정한 너, 그리고 진정한 우리와 진정한 세상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성찰하며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것. 그것은 곧 나 자신과의 관계, 너와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의 정원을 늘 갱신된 마음으로 가꾸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나는 그 삶을 살아내고 싶고, 반드시 살아낼 것이다. 

여전히 삶은 물음표이고, 정답은 없고, 있다 해도 절대 일반화시킬 수도 강요할 수도 없으며, 세상은 여전히 혼란 가운데 있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고, 그래서 두려움도 가득하지만, 오히려 그 두려움 때문에 담대하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을 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다시 깨닫게 된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사유하는 비판적 성찰의 중요성도 다시 깨닫게 된다. 어느새 게을러졌던 내 안의 나를 깨우게 된다. 불안 가운데 평화를, 의기소침함 가운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가져도 되는 이유는 저자처럼 주체가 되어 사유하는 동지들이 비록 소수이지만 나와 같은 길 위에 있다는 사실, 그것을 믿는 믿음과 신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행복"도 이 길 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쓰고도 단 열매일 것이라 믿는다. 나는 그 "행복"을 추구하고 누릴 것이다. 용기를 다시 낼 것이다. 내일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말이다. 내게도 당당하게 "행복"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잠시 잊고 있던 이 권리를 상기시켜 준 저자에게 고마움의 미소를 보낸다. Smiling at you.  

#행성B
#김영웅의책과일상 

* 강남순 읽기
1. 용서에 대하여: https://rtmodel.tistory.com/223
2. 페미니즘과 기독교: https://rtmodel.tistory.com/585
3. 배움에 관하여: https://rtmodel.tistory.com/814
4. 정의를 위하여: https://rtmodel.tistory.com/819
5. 매니큐어 하는 남자: https://rtmodel.tistory.com/854
6. 젠더와 종교: https://rtmodel.tistory.com/924
7.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 https://rtmodel.tistory.com/931
8.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https://rtmodel.tistory.com/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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