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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라는 허울
한승혜 저,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읽고
베스트셀러. 여전히 나는 이 권세 있는 이름 앞에서 온갖 상념에 잠긴다. 쿨한 척 이젠 상관없다고 믿다가도 책이 나오면 어느새 나는 다시 그 이름 앞에 조아리며 구걸하는, 빌어먹을 내 안의 나를 인지하게 된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경멸하다가도 출간 직후에는 그 이름을 내 마음대로 호령하고 제어해서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피라미드 상층부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다시 느낀다. 한두 달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긴 하는데 그래봤자 정도만 다를 뿐 원하는 건 동일하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는 어떤 은밀한 뒷길이 없나 곁눈질하는 단계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즉 어떤 운명 같은 기적을 바라게 되는, 수동적인 모드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다가 좀 더 시간이 지나 이번에도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는 나는 다시 그 이름에 환멸을 느끼고 저주까지 퍼붓는 단계로 진입한다. 아, 구역질 나는 이 반복이라니.
작가라는 정체성을 띠고 저자라는 타이틀까지 갖게 된 이후 겪는 일상의 반복이다. 어쩌다가 해마다 책을 내게 되는 기회가 주어져 해마다 겪고 있는 반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한다. 브랜드가 되어버린 소수의 작가들을 제외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출간 직후 나와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하는. 이율배반성은,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골수에 새겨질 정도로 깊이 숙지했던 점이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속성이라 믿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시녀로 태어난 우리들이 자본주의가 가진 양날의 검 앞에서 어떻게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사후 해석으로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지만 언제나 뒤끝이 남는 이 불유쾌한 감정은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다.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은 어쨌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 이름을 거역하든 찬양하든 상관없이.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책이 일 년에 약 6만 종 이상이라는 보도자료에 기반하면 하루에 약 200 종에 가까운 신간이 발행된다고 한다. 그중 2천 부 안팎의 초판 1쇄를 팔고 2쇄로 진입하는 비율은,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으나, 20퍼센트 미만이라고 한다. 즉 중쇄만 찍어도 성공한 셈이라는 말이다. 이런 출판계의 분위기만 보더라도 대부분의 작가 및 저자들은 초판 1쇄조차 다 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슬픈 현실이다.)
위에 소개한 나의 사례가 와닿았다면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역시 베스트셀러라는 단어 앞에서 태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작가나 저자가 될 기회가 없어 아직 독자로만 머물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느끼는 건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저자라는 타이틀을 갖기 전 내게도 베스트셀러 리스트는 독서라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처음 시작할 때 기대었던 유일한 안전지대였다. 홍수처럼 범람하는 책들에 압도되어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에 출간된 책은 무한을 떠올려도 될 만큼 많은 반면 내게 할당된 시간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엉뚱한 책은 읽고 싶지 않다는, 소위 ‘효율’을 고려하는 차원으로 나는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기준으로 시대의 조류에 편승했었다. 그것이야말로 나도 독서인 대열에, 비록 끄트머리일지라도, 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라 여겼다. 소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왠지 고상한 척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주어질 것 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수십 권을 읽다 보니 이상하게도 내 안에서 뭔가 꺼림칙한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이 갖는 권세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따르던 존재가 실체가 없는 껍데기로 보일 때의 기분. 처음엔 내가 이상한가 싶어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끙끙대기만 했는데, 독서 반경이 넓어지면서부터는 암묵적인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다. 베스트셀러는 소수의 책들을 제외하고는 허울이구나,라는. 그리고 한 가지 더.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베스트뤠드(best-read)가 아니라는 것. 즉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해서 많이 읽힌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책 읽지 않는 이 시대에도 베스트셀러가 계속 팔린다는 건 우리나라 특유의 속성, 즉 대세에 묻어가기의 일환(이것 역시 남들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풍토에서 기인한 것이리라)으로 해석해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는 것이었다. 이건 새것처럼 멀쩡한 수많은 책들이 중고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현상의 이면에 있는 진실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언젠가부터 독자로서는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되면서부터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시적 노예가 되는 반복을 경험하고 있다. 책을 내면서 팔리지 않길 바라는 저자는 없을 것이기에 이건 브랜드가 되지 못한 이 시대의 모든 작가들이 어쩔 수 없이 겪는 굴레일 것이다. 역시 슬픈 일이다.
내 얘기를 하다가 하마터면 이 책에 대한 얘기를 까먹을 뻔했다. 정희용 주간님의 강력한 추천과 책 제공으로 나는 이 책을 세 시간도 걸리지 않아 국수 말아먹듯 마셔버렸다. 그만큼 흡입력이 좋았다는 말이다. 한승혜 작가의 유려한 글솜씨는 읽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성 특유의 문체도 잘 살아 있었고, 평론가 수준의 분석과 의의를 짚어나가는 부분도 정확해 보였다. 상당히 많은 부분 동의가 되었다 (백이십 퍼센트 동의된 책들: ‘자존감 수업’,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언어의 온도’, ‘모든 순간이 너였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법’,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82년생 김지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런 책 읽는 시간에 차라리 잠이나 더 자겠다). 사실 조금 더 세게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베스트셀러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을 가질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책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용기를 내서 할 말을 해주어서 고마움도 느꼈다. 이런 책이 더 잘 팔려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서 편향되고 허세에 찌들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뭇 독자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베스트셀러 책들을 부끄럽게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보았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객관적이고 주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양서를 고를 줄 아는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자리 잡히길 잠시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바틀비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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