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선택
선택할 수 있음은 곧 자유다. 선택한다는 건 적어도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하나를 골라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반쪽 짜리 해석이다. 나머지 하나를 고르지 않는 것. 고르지 않고 버리는 것. 즉 취하는 것만이 아니라 버리는 것을 모두 고려해야 선택과 자유를 온전히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린 어떤 것을 취하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것을 버리기 위해 다른 것을 취하기도 한다. 취하고 버리는 건 동전의 양면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가는 특별한 이벤트라고 여기는 것 같다. 평소에 얻지 못했던 것을 얻기 위해 일부러 휴가도 내며 일정을 조정한다. 내 주위만 봐도 휴가를 떠날 때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취하고 버리는 게 동전의 양면이듯이, 여행도 무언가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상시에 이미 여러 가지로 꽉 찬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건 무언가를 더 집어넣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버리는 게 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믿는다.
취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만큼 잃는 것을 눈여겨보지 못하게 된다. 무언가를 자꾸 욱여넣었지만 마지막엔 공허함에 맞닥뜨리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여행이 재충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밀렸던 일을 처리한 것 같은 효과를 낸다면 과연 그 여행을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여행의 본질을 다시 따져봐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취하는 것이 동전의 앞면이라면, 버리는 것은 동전의 뒷면이라고. 여행은 동전의 앞면보다 뒷면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거라고. 무언가를 열심히 취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더 소중한 것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버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더 소중한 것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상황을 나는 더 즐긴다. 동전의 어떤 면을 바라보려 하는지에 따라 다른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의 누적 (0) | 2025.09.15 |
---|---|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0) | 2025.09.05 |
무풍지대가 아닌 잔잔한 호수 (0) | 2025.06.27 |
무너질 준비 (0) | 2025.06.25 |
지식과 경험, 그리고 겸손 (0) | 2025.06.22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