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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무풍지대가 아닌 잔잔한 호수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6. 27. 09:55

무풍지대가 아닌 잔잔한 호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 뜻 모를 권태, 그리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탈진까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일상의 붕괴현상은 의외로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함에서 더 자주 온다. 누구나 안정을 원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안정적이면 아무런 긴장도, 스트레스도 사라져 나태해지기 쉬우며, 나아가 미래에 대한 소망과 살아야 할 이유까지도 점점 망각하게 되어 자기만의 작은 세상 안에 갇힌 채 세상을 등지고 홀로 조용한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그곳은 평온함을 주는 잔잔한 호수가 아니라 죽음의 장소, 무풍지대일 뿐이다.   

일상의 작은 소란들이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반복되는 잡음들,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의 무게, 그 무게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들. 이런 것들을 원망하지 않는 것. 그것들마저도 넉넉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조금은 더 여유로운 시선을 가질 것. 내게 주어진 일 이면에 숨은 거룩함을 뒤늦게라도 발견하고, 그것이 반드시 저항해야 하거나 불의한 일이거나 악한 일이 아니라면, 감사하며 사랑할 것. 이웃을 돌아보고 새로움과 다양성을 두 팔 벌려 맞이할 것. 새로운 물의 유입이 소리를 내고 스트레스를 줄지 모르나 고이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말 것.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내가 일상을 온전히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 지금, 여기를 무풍지대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가 되게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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