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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9. 5. 13:36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을 발견하고 당당하게 드러내어 무너진 자존감을 주체적으로 회복하라는 메시지는 생각 없이 회색지대에서 기계적으로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용기를 선사한다. 남의 시선에 맞춰 살다가 문득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해 버린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는 구원과 해방을 선사해 줄지도 모른다. 우린 모두 사람이지만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 그 누구도 똑같지 않다는 사실. 여기에는 다양성과 개성이 기본 전제로 깔린다는 사실. 이 자명한 사실들을 개별적으로 깨닫고 실제 삶에서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추구하고 발전시키고 발현시키는 것은 마침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하며 삶을 살아내기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헨리 나우웬의 제네시 일기를 읽다가 한참을 멈춰 서서 생각을 했던 부분이 있었다. 헨리 나우웬은 제네시 수도원에 들어가 수개월을 생활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다른 수도사들과 같아지기를 염원했다. 그게 잘 안 되어서 고심하기도 했다. 여전히 살아 꿈틀대는 ‘특별한 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기도했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려는 몸부림이었다.  

개성화를 이루어 나다움을 회복하는 일, 그리고 다른 수도사들과 같아지기를 애쓰는 일, 이 두 가지 삶의 자세가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자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라면, 후자는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단순히 후자가 기독교라는 배경을 갖기 때문일까? 왜 나는 이 두 가지 모두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걸까? 

나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 이 이율배반성에 나는 주목한다. 전자의 경우, 절대 나의 특별함을 우월함으로 여기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후자의 경우 역시 절대 나의 보편성을 획일성으로 해석하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즉, 나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나는 특별하지만 우월하지 않고, 보편적인 사람이지만 획일적이지 않다는 말과 같다. 서로 상충되는 듯했던 두 메시지는 결국 같은 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런 이율배반적인 진리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어느 한쪽에 치우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 불편하고 어렵고 확신이 서지 않아 답답할 때도 많지만 그 경계를 잘 살려내는 것, 내 안에 잠식되지 않고 타자의 시선에 함몰되지 않는 것. 숨 쉬는 한 끝까지 붙잡아야 할 메시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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