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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즐거움
불안에 잠길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러너 연구소 5층에 위치한 발코니. 나는 그곳에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잠시 현재를 잊곤 했다. 그 당시 나는 보스의 조울증 증세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내 인생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거라며 나를 이곳으로 보낸, 나를 인도하고 내가 믿고 신뢰했던 신에게 반항하고 있었다. 점심을 대충 먹고 한적한 발코니로 나와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십여 년이 지나도 그곳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저 높이 드론이 찍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곳에서 나는 경미한 뇌경색 증상을 겪기도 했다. 모든 말을 다 알아듣고 생각도 동일하게 할 수 있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확한 단어 선택이 불가능했다. 그 순간 이러다 죽는가 보다 싶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언어가 먼저 사라지는 건가 싶었다. 다행히 그 순간 아내가 옆에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기적이었다. 아내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고 나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지면서 카펫에 크게 토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위장에 있던 것들이 다 쏟아져 나오면서 내 말도 다시 트였다. 언어가 돌아왔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의 환희를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언어가 돌아온 것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를 읽는데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났다.
모든 불안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레이랜드의 불안이 오늘따라 내 마음 깊숙이 전해진다. 이미 오진이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레이랜드는 그 부활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쫓으며 모든 순간들을 재해석한다. 인생을 톺아보며 다시 얻은 소중한 현재를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클리블랜드 클리닉 러너 연구소 5층 발코니에 서서 멀찍이 거리를 내려다보는 내 모습이 떠오른 이유를 알 듯하다. 레이랜드가 낮은 마음으로 인생을 돌아보는 모습에서 나는 나를 본 것이다.
레이랜드는 기억하는 시간이 이해하는 시간이라 했다. 그러나 기억하는 시간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다. 클리블랜드에서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만 동시에 낯설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때도 몰랐다. 내가 왜 그런 상황에 처해졌는지, 앞으로 어떤 불확실성에 더 노출되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생산적인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란 추측밖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없다. 그런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내가 이런 현재에 와 있는지, 가까운 미래조차 확실하지 않은 이런 현재를 나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리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5층 발코니에 있던 나와 다른 점이다. 불안이 그때의 나를 기억나게 했지만, 지금의 나는 불안하지 않다. 이런 게 나이 들어가는 즐거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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