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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_’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을 읽고
실증 과학이 아닌 실증주의를 넘어서
현상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후설이라는 이름의 무게보다 내겐 더 컸다. 늘 듣기만 했지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철학 사조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후설 말고도 현상학과 관련된 철학자 몇몇의 이름들도 내겐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 압박을 이미 가지고 이 스무 페이지의 글을 읽었다. 가려운 데가 전혀 긁히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이남인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소개하는 이 짧은 소개글은 현상학의 기원과 그 배경에 집중한다. 내가 궁금했던 건 이미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고 있던 '판단중지'라든가 '노에시스-노에마' 등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그런 건 전혀 다루지 않았다. 너무 쉽고 대중적으로 쓰였기 때문인지, 내가 엉뚱한 걸 기대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문체와 설명하는 방식이 내겐 매력적이지 않았다. 스무 페이지를 읽고도 별로 남는 게 없다니. 차라리 조금 어렵더라도 알고 싶은 욕망을 더 자극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여전히 가려운 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내게 남은 건 이 글의 제목이 다다. 실증 과학이 아닌 실증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철학 사조가 현상학이라는 것. 20세기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던 실증주의는 과학주의와 유사한 의미로 이해되었다. 실증 과학이 모든 학문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릇된 철학이 바로 실증주의다. 후설은 이 실증주의 때문에 모든 학문 전체의 원천인 철학이 병들었다고 판단했고 그에 따라 수학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던 그는 현상학을 창시했던 것이다.
후설이 비판했던 실증주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과학만능주의와 연결되는 것 같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마치 그 어떤 것도 진리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득력이나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과학이 하나의 종교 혹은 신념 체계가 된 것 같은 양상이 바로 과학만능주의인데, 이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과학만능주의는 과학이 아니다. 철학이다. 신념이다. 주관인 것이다. 과학자를 업으로 하고 있는 나도 과학를 진리로 믿지 않는다. 과학은 그저 어떤 현상에 대한 그 시공간에서의 최선의 설명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합리적인 설명이 등장하면 기존의 설명은 폐기되고 만다. 과학자에게 이런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과학은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반면 진리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 아닌가.
내적 지각, 의식의 본질, 지향성, 세계 의식, 초월론적 현상학, 초월론적 주관 등의 개념 설명을 아주 간략하게 하고 있는 이 글을 읽으며 현상학이 궁금해지기보다 나로부터 매력을 잃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괜히 읽었나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일견으로는 현상학이 굉장히 주관성에 입각한 철학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함부로 판단하면 곤란하니 다른 책을 하나 구해서 현상학에 대한 기본을 공부하는 게 낫겠다. 현상학을 대중적으로 쉽게 설명한 책이 있다면 추천 바란다.
*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 읽기
1. 노동의 존재론과 칼 맑스의 혁명 사상: https://rtmodel.tistory.com/2092
2.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무의식 혁명: https://rtmodel.tistory.com/2102
3. 프리드리히 니체가 제시한 미래철학의 서곡, 관계론: https://rtmodel.tistory.com/2111
4.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 https://rtmodel.tistory.com/2121
#동녘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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