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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멈추는 순간 - 확실성과 불확실성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4. 25. 19:55

멈추는 순간
- 확실성과 불확실성

책을 읽는 한 가지 이유는 멈추기 위해서다. 반강제적으로 나를 멈추게 만드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그런 문장을 만나는 날이면 더 이상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 그날의 책은 다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 앞에서 멈추게 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때그때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단순한 기분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책을 읽을 때의 나는 의식적인 나뿐만이 아닌 무의식적인 나도 함께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후자의 내가 문장을 먼저 감지하고, 전자의 나는 이후의 반응을 담당할 뿐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이 문장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 … 과거에는 분명히 선하고 옳았던 것들이라도, 어느 시점에는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다. 그것들이 오히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끔 방해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분, 곧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연결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거의 강압적이라 할 수 있을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는 이런 순간을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시간이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거부할 마음은 없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쓴 저 문장이 내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툭 건드려 버렸으니 말이다.  

어제저녁에 공부한 히브리어 단어는 '마임 하임 (מַיִם חַיִּים)'이었다. 한국어로는 '생수'라고 번역되는 두 단어다. 마임은 water, 하임은 living이니 살아있는 물이다. 아래 쓰여있는 짧은 설명을 읽다가 아하 싶었다. 모든 흐르는 물은 살아있는 물이라는 말. 그래서 이에 대조되는 것은 '웅덩이 같은 것에 고인 물'이라는 말. 하나님의 은혜는 저장하거나 모아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까지. 가슴에 깊이 박히는 시간이었다. 

앞에 발췌한 저 문장들이 오늘 나를 멈추게 만든 것도 어쩌면 어제 공부한 '마임 하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별개인 것 같은 것들이 어느 순간 다른 눈으로 보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마다 나는 기적의 순간을 경험한다고 믿는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외부에서 침투하는 구원의 빛과도 같은 은혜의 순간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장하거나 모아둘 수 없다는 말, 그것은 흐르는 것이고, 또 흘러야만 살아있다는 말. 내가 과거에 확실함으로 믿었던 것들, 선하고 옳다고 믿고 의지했던 것들, 이런 것들조차 어느 시점에는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다는 것. 그 이유는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해서 경험하기 위해서라는 것. 은혜가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고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나를 온전히 열고 내려놓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  

흐르는 물, 살아있는 물, 하나님의 은혜. 내가 과거에 믿고 의지했던 선하고 옳은 것들은 무엇일까.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 나는 과연 순종할 수 있을까. 확실했던 것을 내려놓고 불확실하게만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붙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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