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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굵기와 행복
인간은 세상 속으로 내던져졌고(피투 되었고), 인생의 굵은 선들은 이미 그어져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기도 전에, 아니 의지라는 것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것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태어난 시대, 국가, 성별, 부모, 유전자 등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나를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된다.
이런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내가 무엇인가를 원하고 성취하는 것들은 모두 이미 그렇게 주어진 굵은 선 안에서 그려가는 가는 선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은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다는 것도.
대부분의 인생은 타고난 것들의 지배 아래서 이뤄진다.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말, 혹은 피는 못 속인다는 말도 과장된 표현이지만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운명론자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게 이미 다 결정된 것처럼, 마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해봤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거라는 믿음으로 허무주의에 빠질 필요 없다. 이런 자세야말로 운명에 굴복하고 패배하는 일이다. 평생 이미 그어진 굵은 선들을 비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절망 속에 살기로 한다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가는 선은 굵은 선보다 가늘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가는 선들을 그리는 것이다. 이것만큼은 공평하다.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모두가 원점인 것이다. 즉, 우리에겐 여전히 선택권이 있다. 가는 선들을 그릴 것인지 말 것인지. 놀랍게도 인생의 진정한 차이는 여기서 난다.
가는 선들이 겹쳐지면 굵어지기도 하고, 굵은 선들이 이뤄내지 못하는 것들을 가는 선들이 해 내는 경우도 있다. 만족감이 어떤 커다란 일의 성취만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의 작은 성취들이 가져다주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인간은 이미 주어진 것들이 아니라 자신이 그려나가는 일들로부터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일 가운데 행복을 느낀다. 굵은 것들이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행복은 선의 굵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옆집 철수가 가진 굵은 선이 내 눈에 좋아 보여도 철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 결코 행복해하지 않는다. 철수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마 철수는 옆집 영희의 굵은 선이 자기가 가진 선보다 더 좋아 보인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가.
인생의 굵은 선과 가는 선의 차이를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분별할 줄 아는 건 지혜에 속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가끔 이런 걸 희미하게 감지할 뿐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희미한 감지조차도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야 가능해지는데, 세속에 찌든 인간들이란 나이를 먹으며 공허와 허무를 양식으로 삼아 스스로 지혜자의 자리에 오르기 때문에 분별력은 요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점점 더 가는 선들을 그리는 것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눈은 점점 탁해져 가고 타성에 젖은 채 모든 흥미를 잃어버리고 돌이 되어간다. 가는 선도 굵은 선도 모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태로 치닫는 것이다.
가는 선들을 함께 그려가는 동지가 있으면 그것이 최고 행복이다. 가족과 친구가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 함께함은 그 어떤 굵은 선보다도 굵고, 그 어떤 굵은 선이 해 내지 못하는 일도 해 낸다.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선의 굵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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