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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힘
미야모토 테루는 외적 우연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생명의 힘이라고 했다. 번역의 문제인지 모르지만 내겐 착 와닿지 않았다. 생명의 힘이 아니라 인생의 힘 혹은 지혜, 연륜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Life는 생명이기도 하지만 인생이기도 한 것처럼.
그는 종교가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통찰을 할 수 있었다는 건 그가 천상 작가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삶의 껍데기가 아닌 그 안을 들여다 보고 의미를 찾고 곱씹는 자세가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통찰이라 믿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인 나는 저 문장을 하나님의 계획 혹은 섭리로 읽는다. 우연을 가장하여 다가오는 필연적인 사건들, 만남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신앙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혹은 운명을 믿든 믿지 않든, 어떤 일의 발생을 해석하는 인간의 접근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공통점은 이것이다. 세상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지만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 인간의 이성을 훌쩍 넘어서고 비합리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일들로부터 인간은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 보려 늘 애쓴다는 것. 그러나 결국 영원히 알 수 없는 일로, 신비로 남게 된다는 것.
나는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저 너머의 무언가를 상정하는 자세에서 겸손을 배운다. 모든 인간의 시작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적어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에게 그 존재는 신이다. 신을 믿는 건 그러므로 기본적으로는 겸손의 행위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일어나는 일들의 배후와 중심, 그리고 일의 발생만이 아니라 그것의 과정과 끝맺음까지 인간의 의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한다면 (그러므로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어야 한다) 겸손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말하자면 실패 없이 성공만 거듭한 사람들이다. 모두 성공을 원하지만 실패를 거치지 않는 성공은 인간에게서 겸손을 앗아간다. 곱씹고 성찰하고 반성하며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은 겸손할 수 없다.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의외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신앙을 가지고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 채, 마치 실패 경험 없이 성공만 해온 사람처럼 구는 부류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겸손의 껍데기를 걸친 교만 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믿는 신은 어떤 신인지, 무엇을 위해 믿는지, 왜 믿는지 나는 궁금할 뿐이다.
운명을 믿지 않아도 운명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되는 존재가 인간이다.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의 개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하게 되는 존재가 인간이다. 신을 믿든 안 믿든, 그건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 채 겸손하지 못한 것은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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