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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를 전달하는 필연적인 방법
온기를 느껴보기 전까진 그동안 머물렀던 모든 공간이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혼자 있는 게 공기처럼 익숙해진 사람에게 필요한 건 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물건 따위가 아닌 사람의 온기다. 공허는 단지 비어 있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차갑게 식어 있음을 간과하면 공허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온기만이, 사람의 온기만이 공허의 소멸을 가져온다.
온기는 오직 함께함으로 전달된다. 열의 전달 방식으로 말하자면 복사다. 태양열과 같은. 그 복사열은 공허했던 사람에게 전달되어 자신의 가시 돋친 차가운 껍질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그러나 온기를 나눠 주는 사람은 상대방의 가시에 찔리는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고통을 주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주는 고통을 온전히.
인류를 사랑하는 건 온기만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의 실천은 그 온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받게 될 고통을 끌어안는 인내로 가능해진다. 컵 없이 물을 전달하지 못하듯 인내 없이 온기를 전달할 수 없다.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
나는 그동안 공상적 사랑을 비판하면서도 실천적 사랑을 행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던 탓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절 '사랑은 오래 참고, ….'를 비로소 조금 이해한 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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