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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지난한 반복: 열정, 인내, 희생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8. 1. 12:03

지난한 반복: 열정, 인내, 희생

며칠 전 500번째 감상문을 남겼다. #김영웅의책과일상 이라는 해쉬태그로 감상문을 쓰기 시작한 건 10년 전이었다. 10년 만에 500개이니 대충 계산해도 평균 1년에 50개의 감상문을 썼다는 얘기다. 1년이 52주이니 평균 일주일에 한 편 정도 꾸준히 써왔단 얘기도 된다. 나는 개수보다 10년이라는 기간에 주목한다. 나이 들어가며 점점 더 진리로 다가오는 것 중 하나가 성실한 지속의 힘이기 때문이다. 루틴의 힘. 그 지난한 반복의 힘. 이 힘은 여러 가지 작은 힘으로 이뤄진다. 열정, 인내, 희생, 이 세 가지 힘으로.  

열정은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다. 하지만 많은 일들은 시작만 하고 오래 이어지지 못하는데 그건 인내의 부재 때문이다. 인내는 그 어떤 것이라도 오래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힘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만 번 바뀌고, 그토록 뜨겁던 열정도 순식간에 식어버릴 수 있기에, 그리고 갑자기 해야 할 이유를 상실하거나, 다른 일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이유 없이 귀찮아져 버릴 때가 우후죽순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인내할 줄 모르면 어이없을 만큼 가볍게 포기로 이어지게 된다. 인내는 무조건 참는 게 아니다.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합리적으로 말하자면 우선순위라는 개념을 들고 올 수도 있겠다. 소중한 것을 지속하기 위해 덜 소중한 것들을 손에서 놓는 일이 수반되지 않으면 인내는 무식하고 고지식한 행동밖에 되지 못한다. 희생을 다른 말로 하면 지켜내는 일이다.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덜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것. 그러므로 희생은 분별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열정으로 시작한 일을 인내하며 희생할 때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  

나에게 감상문은 독서의 마지막 단계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는 경우에는 나눔이 마지막 단계이지만, 그런 책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은 혼자 읽고 혼자 감상문을 쓰며 마무리를 한다. 나는 그렇게 하나의 책이 나를 통과하며 남긴 흔적들을 기념한다. 기념하지 않는다고 해서 흔적이 남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되기 때문에 쓰지 않으면 그 흔적은 망각되기 마련이다. 기념하는 일은 그러므로 기억하는 일이다.  

기억은 단순히 읽은 책을 기억하는 게 아니다. 그 책과 함께했던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감상문은 인터넷에 즐비한 앵무새식 서평(이라 쓰고 카피와 짜깁기라고 읽는다) 따위와는 다른 형식을 띤다. 책의 요약과 소개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나는 내가 그 책과 함께한 나의 소중한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감상문을 쓴다. 말하자면 나의 감상문은 독자를 위한다기보다 나 자신을 위한 글인 셈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감상문은 남길 것이다. 이제 감상문을 쓰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을뿐더러 완독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나를 위해 나는 계속 쓸 것이다. 500번째 감상문을 완성했으니, 1,000번째 감상문은 앞으로 10년 뒤에나 가능하겠다. 과거 10년간 점진적으로 개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7-8년 정도 걸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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