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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읽기의 방식들 (1): 문학과 비문학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8. 3. 19:00

읽기의 방식들 (1): 문학과 비문학

읽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읽기란 독서를 말한다. 책을 읽는 것 말이다. 요즘엔 워낙 책 읽는 사람이 드물어 이런 걸 따져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뭐 한두 명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렇게 쓰면서 내가 정리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본다. 

먼저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부류의 경계가 흐려진 감이 없진 않지만, 여기에서 문학이란 주로 소설을 뜻하고 시, 희곡, 에세이도 포함한다. 소설 역시 순수 소설과 장르 소설로 나뉜다고 하지만, 여기에선 하나로 보기로 한다. 소설을 주로 읽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소설만 읽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비문학, 그러니까 인문학, 철학, 신학, 자기 계발서 등을 주로 읽는 사람들은 보통 소설을 읽지 않는다. 현재의 나로서는 이 자발적인 분리됨을 이해할 수 없지만, 내가 독서 자체를 거의 하지 않던 대학/대학원생 시절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 있긴 하다. 그땐 시간이 아까웠다. 지금은 절대 하지 않을 말이지만, 그땐 "소설 따위나 읽을 시간이 있으면 논문을 한 편 더 읽거나 놀거나 잠이나 퍼 자겠다"라고 지껄이기도 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당시 독서를 할 거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실용서를 읽어야지 뭐 하러 소설 나부랭이나 읽냐는 식으로 함부로 여겼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지금도 소설을 읽지 않고 실용서 위주로 읽는 사람들, 특히 엘리트층의 고급스러운 자들은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소설 읽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기본적인 전제로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 독서는 곧 지식 습득을 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치 그들의 말이 맞기라도 하는 듯, 소설만 읽는 부류는 엘리트층이 아닌 비엘리트층에 주로 속해 있다. 이유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스토리텔링이라는 건 사실 문자가 등장하기 전에도 존재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소설도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학문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반면 비문학의 경우는 그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저자들이 쓴 글로 이뤄진다. 그러므로 비문학만을 주로 읽는 독자들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책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까운 시간을 투자하여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논리다.  

비문학과 독자의 관계를 수직적이라고 본다면, 문학과 독자 관계는 상대적으로 수평적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평적인 관계에 놓인 소설의 경우는 독자들이 배울 게 없을까? 아까운 시간을 투자해서 몰랐던 지식을 얻지 못할까? 고급진 엘리트들은 그렇게 여길지 몰라도 (물론 절대 그렇다고 입으로 내뱉지는 않을 테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이야말로 모든 학문을 아우르며 담을 수 있는 가장 큰 그릇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소설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비문학을 어느 정도 읽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같은 스토리텔링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이 가진 배경지식에 따라 다른 차원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소설은 단순한 스토리텔링이 아닌 스토리텔링 방식을 이용한 메시지 전달에 그 목적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어떤 장면을 묘사하든, 어떤 사건의 발단, 전개, 결말을 풀어주든, 그 소설을 쓴 작가는 자기만의 사상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사상을 담아내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 형태로 텍스트에 고스란히 담긴 게 소설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외형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 혹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소설가가 그 이야기를 통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채는 것 말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소설'이라고 하면 단순히 기발하거나 흥미로운 서사를 가진 소설과 같은 거라고 말할 게 뻔하다. 그러나 서사가 대단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 될 수 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써내는 소설에서 나는 언제나 강한 인상을 받는다. 줄거리 안에 담긴 작가의 사상과 그것을 담아내는 작가의 문체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시선에서 나는 묵직한 감동을 받는다. 이런 걸 알아채지 못하면 소설을 제대로 읽는 게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비문학이 아닌 문학으로부터도 충분히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라는 걸 말하고자 이렇게 둘러 왔다. 또한 문학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비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읽기가 갖춰져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하자면 문학이 비문학보다 더 목적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런 논리로 보면 비문학만 주야장천 읽는 사람들은 독서의 진정한 맛을 여전히 모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서는 공부의 한 방법이지만, 독서의 기본적인 목적은 유희라고 보는 나로서는 특히나 비문학으로만 독서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책상에서 공부밖에 안 하는 공부벌레 정도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부류와는 그리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AI 시대에 사실 그들의 존재 자체도 별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박학다식한 사람의 매력은 이젠 시대착오적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덩달아 하게 된다.  

그러나 공감하고 인간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면서 또 틀리고 그래서 또 찾아 나서는 무한반복을 하게 되는 소설 독자, 문학 독자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AI 가 일상이 되어도 고유함을 가진 채 살아남으리라 생각한다. 수직적인 지식 전달보다 이야기에 힘이 있다. AI 시대에 읽어야 할 책으로 소설을 나는 꼽는다. 소설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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