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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읽기의 방식들 (2): 직렬과 병렬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8. 4. 12:33

읽기의 방식들 (2): 직렬과 병렬

한 권을 읽을 때가 아닌 여러 권을 연달아 읽을 때 드러나는 독서의 방식이 있다.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여기에서는 편의상 직렬 독서와 병렬 독서라고 하자. 직렬 독서는 한 권을 다 읽고 그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방식이고, 병렬 독서는 한 권을 다 읽기 전에 다른 책을 함께 읽어 나가는 방식이다. 때에 따라 함께 읽어 나가는 책이 한 권이 아니라 두세 권을 넘기기도 한다. 참고로 나 같은 경우는 보통 네 권 정도를 병렬로 읽어 나간다. 

직렬 독서의 장점은 책임감 있는 집중력에 있다. 다음 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걸어 두고 읽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책들의 내용과 중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그 책 한 권만 읽고 생각하고 또 읽고 또 생각하고를 반복할 수 있다.  

반면 병렬 독서의 장점은 상황에 따른 유연함에 있다. 이는 직렬 독서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통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늘 책상 앞에서만 책을 읽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보질 못했다. 내가 아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책 한 권 이상은 들어 있다. 이들은 장소와 시간을 달리 하여 책을 읽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책을 아무리 좋아해도 장소와 시간의 영향을 받는 법. 이를테면 손님이 계속 드나들고 음악 소리가 계속 울러 펴지는 카페에서 읽기 적당한 책과 조용하게 홀로 밤에 스탠드 불빛 아래서 읽기 적당한 책은 다르기 마련이다. 병렬 독서를 즐기는 나 같은 사람은 상황에 맞게 책을 번갈아 가며 읽는다. 나 같은 경우, 버스나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어딘가를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 한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소설을 읽거나 성경이나 신학책을 읽는다. 약속이 없는 휴일 오후에 책 읽을 시간이 생기면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닌 술술 읽히는 소설을 주로 읽는다. 안 그러면 쉽게 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침에 책 읽을 시간이 나면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조금 어려운 책 위주로 읽는다. 비문학을 읽을 경우가 많다. 철학책이나 인문학책 등을 기웃거린다. 이런 식으로 상황에 맞는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병렬 독서는 이런 면에서 결과에 해당된다. 병렬 독서를 하고 싶어 하게 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처음부터 나는 병렬 독서를 해야지, 혹은 나는 직렬 독서를 고집해야지, 하면서 독서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렬의 경우는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하게 되는데, 독서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책 한 권 읽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글씨 하나를 빼놓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는 그 넘쳐나는 의지와 열정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무엇이든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나오기라도 하면 거기에 걸려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다시 독서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패턴을 만약 반복한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나는 병렬 독서를 권해 본다. 단순히 쉬운 책을 읽어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요럴 땐 이 책을 읽어 보시고, 또 이럴 땐 요 책을 한 번 읽어 보셔요,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나오면 과감히 넘기고 진도를 끝까지 빼 보셔요,라고 말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도 여러 번 경험을 했다. 병렬 독서는 직렬 독서가 독서의 전부라고 믿고 독서를 하고 싶으나 항상 포기해 왔던 분들에게 하나의 해결책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병렬 독서도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른 유연함을 달리 말하면 손에 잡은 책 한 권에 대해서 직렬 독서가보다 책임감이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책을 손에 쥔다고 해서 그때 손에 쥔 책이 항상 잘 읽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병렬 독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잘 읽히지 않으면 다른 책으로 메뚜기처럼 건너뛴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면 잘 읽히지 않을 때 그냥 안 읽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병렬 독서는 자유분방함을 가지지만, 그 자유분방함이 독서를 안 하게 만드는 결과도 초래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 반복되다 보면 뭐 책을 꼭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진행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병렬 독서를 과신하게 되어도 독서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직렬이나 병렬이나 미리 선택하고 독서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게 되면 둘 다 독서에서 멀어질 위험이 있다. 병렬 독서로 책을 여러 권 함께 읽어 나가되, 어느 한 상황에서 고른 책 한 권에 대해서는 마치 직렬 독서를 하듯이 읽도록 애를 쓸 것. 이것이 내가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으며 이른 결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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