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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읽기의 방식들 (3): 추천작과 전작 읽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8. 4. 15:18

읽기의 방식들 (3): 추천작과 전작 읽기

어떤 책을 읽을까? 이 질문은 독서에 입문한 사람만이 아니라 독서가 일상이 된 사람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익하더라도 책은 마지막 페이지가 있다. 거기에 다다르면 그동안 그 책과 함께했던 시간과 공간들이 떠오르고 잠시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에 어떤 책을 또 읽을지 고민하게 된다. 물론 리스트를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읽어 나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어디 리스트 순서대로 따라가게 되던가. 진지한 작품들을 읽다가도 외도를 하듯 웹툰이나 만화책을 볼 수도 있고, 추리소설 같은 장르소설로 환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작 리스트에 올렸던 작품들이 점점 멀어지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책 한 권 읽는 게 아니라 지속해서 여러 책을 읽어 나가는 걸 독서라고 정의한다면, 독서는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예측 밖의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활동인 것이다.  

독서에 입문한 사람들이 주로 하는 패턴이 있다. 아직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한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미리 그 책들을 읽어본 사람들의 평을 의지하게 된다. 나의 관점이 아닌 타자의 관점에 의지하여 책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조차 성공할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많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신력이 있다거나 별 이견이 없다고 믿는 소위 랭킹 시스템에 기댄다. 말하자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고르거나 어떤 상을 받은 책을 고르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는 말 그대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판매가 좋아는 말이다. 이를 조금 비딱하게 보면, 판매가 좋은 책이지 좋은 책은 아닐 수 있다, 로 해석할 수 있다. 나 역시 베스트셀러 위주로 처음엔 책을 구입해서 읽은 적이 있다. 절반 이상은, 아니 팔 할 정도는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이게 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작품들이 많았다. 대중적인 인기와 작품의 진의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책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된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이건 사실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명하다고 하면 뒤처지지 않기 위함인지 왜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자기도 그 대세에 합류하고자 하는 심리가 강한 것 같다. 읽지 않아도 구매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베스트셀러의 허점이 드러난다. Best-seller는 Best-read가 아니라는 것.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해서 많이 읽혔다고 절대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좋은 책이란 많이 팔린 책이 아니라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믿는다. 이런 면에서 어쩌면 도서관에서 대출 순위를 살펴보는 게 좋은 책을 가늠하는 더 좋은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서 도서관에서조차 늘 선점을 때려서 빌려 두고 읽지도 않고 연장에 연장을 하는 족속들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어떤 수상작을 읽는 건 베스트셀러라는 잣대보다 조금은 더 공신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한 책 판매가 아닌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친 후에 선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문가의 시선은 일반인인 우리의 시선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서를 막 시작한 사람이나 어느 정도 읽은 사람도 그런 전문가의 평을 다 이해하긴 어렵다. 전문가의 눈에 보인 그 작품의 장점이 우리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례로, 소설을 스토리텔링 정도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지루하다거나 이게 뭐야 하는 식으로밖에 읽어내지 못한다. 그 작품에 담긴 작가의 절제된 문장들로 쓰인 회한과 울분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특별한 서사도 없고 한 남자의 인생을 톺아보는 소설이기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 작품의 진의를 맛보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어떤 상을 받았다고 해서 내 입맛에도 대단하게 느껴질 거라 믿는 건 실수일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읽으라는 말이냐, 하고 말할 수도 있겠다. 미안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천 권을 넘게 읽은 나도 아직 어떤 책을 읽을지 여전히 망설이다. 하지만 이 망설임이 나는 즐겁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독서에 입문한 사람은 왠지 모를 조바심에 그 망설임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에 입문한 사람에게 취향을 물어보고 그에 맞는 책들을 두세 권 한꺼번에 추천한다. 그러면 보통 한 권 정도는 좋았다고 피드백을 받는다. 자,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답이 나왔다. 책을 두루 읽는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아볼 것. 나는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패 확률이 적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책 한 권을 제대로 즐겼다면, 그다음엔 알아서 책을 선정하면 된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는다든지, 비슷한 주제나 문체로 쓰인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든지 하는 선택을 마음껏 하면 된다. 당연히 실패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실패를 하지 않는 독자는 없다. 책을 사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된다면 도서관을 이용하면 된다. 거기에서 여러 권을 빌려서 한 권만 제대로 읽어내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한 권, 두 권 읽어나가다 보면 독서의 맛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미 말이 나와 버렸다. 추천작 대비 전작 읽기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전작 읽기는 사실 독서 입문자들의 쉬운 선택은 아니다. 책을 좀 읽어본 사람들이,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두루 읽어본 사람들이 한 작가를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전작 읽기는 그러므로 독서 경험이 좀 있는 사람들의 의지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결과에 해당되기도 한다. 많이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한 작가의 작품도 여러 권 읽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이전 작품이 궁금해지고, 그 작품을 또 읽다 보면 더 이전 작품이 궁금해지는 연쇄작용이 일어나기 마련이기에, 어쩌다 보니 전작 읽기를 나도 모르게 해 버리게 되는 현상도 심심찮게 벌어지게 된다. 그 작가 다작을 하지 않은 경우라면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작가가 쓴 작품의 대부분을 이미 읽어버린 상황도 왕왕 생긴다.  

그렇게 어쩌다 하게 되는 전작 읽기 말고, 어떤 굳은 결심과 의지로 전작 읽기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랬다. 헤세, 도스토옙스키, 이시구로의 작품은 모두 읽었는데, 이런 계획된 전작 읽기의 장점에 대해서 조금만 풀어볼까 한다.  

어떤 하나의 책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는 것과 여러 책을 한 번씩 읽는 것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전작 읽기의 효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아마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열 번 읽었다느니,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열 번 읽었다느니, 하는 말들 말이다. 한 책을 반복해서 읽게 되면 거의 외우다시피 그 책을 흡수하게 된다. 얼마나 이해했는지와도 비례하겠지만, 하나의 책을 진짜 흡수하게 되어 읽는 이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무엇을 해도 그 책의 내용이 생각나고 문장들이 떠올라 모든 것을 그 책을 통해 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책을 반복해서 읽게 되면 그 책은 읽는 이의 렌즈가 된다.  

전작 읽기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들이 하나의 렌즈가 되어 그 작가의 시선으로 모든 걸 보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책 한 권을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는 전작 읽기로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는 게 나는 조금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책 한 권에는 그 책을 쓴 작가의 모든 걸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품을 읽게 되면 그 작가를 마치 아는 사람인 듯한 착각에도 빠질 수 있게 된다. 책 한 권 반복 읽기가 줄 수 있는 오류를 전작 읽기는 비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전작 읽기는 하나의 거대한 산맥을 넘는 것과 같다. 실로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혼자서 성실하게 아무도 보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묵묵히 시간을 투자하며 땀을 흘린 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전작 읽기의 엄청난 수혜자라고 고백한다. 특히 도스토옙스키를 읽어낸 경험은 (그것도 두 번이나) 내게 독서의 방향과 자신감은 물론 내가 지금은 인지하지 못하는 여러 혜택을 주었을 거라 믿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를 읽기 전과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졌냐,라고 말해보라고 하면 딱히 꼬집어서 말할 건 없다. 하지만 그 이후의 독서는 한결 편해졌고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게 생겼다 (사실 근자감이라는 건 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감 덕분에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이라는 독서모임을 1년 반 동안이나 이끌어서 열 명 정도의 분들과 함께 거의 전작을 읽어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모인 분들의 케미가 정말 중요했지만, 나의 자신감과 열정이 없었다면 모임은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경험을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나의 인생 후반전의 모토인 기억에 남는 삶, 더 사랑하고 나누는 삶과도 맞닿아 있어서 내겐 삶의 방향을 보여준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이게 다 전작 읽기의 혜택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호메로스를 읽기 시작한다. 고전 중 고전이다. 십 년 가까이 미루고 미뤘던 과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작 읽기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혜택을 여러모로 봤었기에 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전작 읽기는 독서의 깊고 풍성함을 맛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다들 한 번씩은 꼭 경험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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