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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하는 힘
정명섭 저, ‘하루’를 읽고
- 수북강녕 단편집,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말할 것' 중 두 번째 소설
이번에는 수.북.강.녕. 중 ‘강‘이 부여된 작품이다. 순서상으론 ’수‘ 다음으로 ’북’이어야 하지만, ‘북’이 부여되었어야 할 글의 저자 김자영 변호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자리가 무한히 연기된 탓에 세 번째 한자어, 건강을 소망하는 ‘강‘으로 바로 넘어가게 되었다. 정명섭 작가 역시 이 소설을 김자영 변호사에게 헌사한다. 그래서인지 ‘북’이 부여된 비어있는 한 페이지가 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특히 장수를 소망하는 ‘수’ 다음을 장식한 빈 페이지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정명섭 작가의 작품 ‘하루’에는 ’수‘를 장식했던 장강명 작가의 ’벡사시옹의 밤‘과 달리 환상적인 요소가 없다. 대신 공상과학적인 요소가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먼저 온 미래’ 혹은 ’곧 도래할 현재’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하루‘라는 앱을 통해 대부분 사람들이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컨설팅받는 시대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잘 나가는 젊은 사업가인 이현 역시 하루 앱을 중학생 때부터 사용해 왔고,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며, 이 앱을 거의 교주처럼 신봉하는 인물이다. 그는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앱 없이 혼자서 결정해 본 적이 거의 없을뿐더러 여자친구와의 이별조차 앱이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실행해 버린 체제순응형 인물이다.
소설은 이러한 이현에게 구원을 베푸는 서사를 선보인다. 구원은 이현을 그 체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한 동네책방을 통해서 그것이 실현된다는 점이 바로 이 소설의 메시지다.
소설이 그리는 앱 의존적인 시대에, 청정지역이라 할 수 있는, 전파 차단 지역에 위치한, 시대를 거스르는 보석 같은 건강한 서점이 등장한다. 바로 수북강녕이고 이현에게 드리워진 구원의 장소다. 운 좋게도, 혹은 운명적이게도 이현은 수북강녕 근처, 그러니까 창덕궁 바로 옆에 살고 있다. 어느 날 하루 앱에 오류가 발생한다. 스스로 모든 삶의 주도권을 하루 앱에 넘겨버린 이현은 사실상 일상이 멈춰버리는 재난을 맞이한다. 집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어 산책을 나가 무작정 걷던 중, 우연찮게, 혹은 운명적으로, 수북강녕 서점을 만나게 된다.
이현의 발걸음을 누가 인도했을지 궁금했다. 이현은 단지 개별적인 한 사람이라기보다 이 시대,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영상이 텍스트를 대체하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소통보다 중간에 하루 앱처럼 의식이 없는 인공지능의 컨설팅을 매개로 소통해야 안전하고 효율적이라 느끼는 이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이기에, 나는 이현을 구원하는 주체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전 없이 정직하게 흘러가는 전개에 다소 진부함도 느꼈지만, 책이란 것 자체가 진부함의 대명사라고 할 수도 있기에 나는 이 소설의 흐름이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진리가 기발함이 아닌 뻔함 속에 있다고 믿는 나는 이게 좋았다.
우연찮게 방문한 동네책방 수북강녕에서 이현은 잊고 있었던, 혹은 내면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 있었던 아날로그 방식의 매력을 느끼고,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하루 앱에 의존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서점을 한 달 넘게 오가는 동안 그는 다시 자기 삶의 주체로 서서히 거듭나게 된다. 나중에 하루 앱의 오류가 해결되고 나서도 예전의 수동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바야흐로 이현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현의 부활을 단순히 책을 통해서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책은 하루 앱도 추천해 주었고 그 책을 읽으며 도움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현을 구원한 건 단순한 책이 아닌, 서점에서 오감으로 만나는 책이었다고 말해야 한다. 만질 수 있고,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도 있는, 물성을 가진 책 말이다. 그런데 물성을 가진 책만으로도 여전히 부족하다. 아무리 물성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의식이나 의지를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주체성의 회복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앱의 지시 없이 주체적으로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그곳에서 이 책 저 책 훑어보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시간을 보내며, 서점 주인장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차도 한 모금 마시며, 책이 잘 안 읽힐 땐 그저 멍하니 서점에 앉아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들 이면에서 나는 비효율이 아닌 사람다움을 보았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씩 알아가는 주체적인 과정은 비록 가성비가 떨어질지는 모르나, 우리가 여전히 사람이라는 것을, 노예가 아닌 주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는 무언가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정명섭 작가는 이러한 주체성 회복을 책과 서점을 통해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 구원의 서사에 정신적이고, 어쩌면 영적일 수도 있는 건강함을 부여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정명섭 작가에게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한 술 더 뜨고 싶다. 이현을 구원하는 방법은 이 시대에 오직 물성을 가진 책과 그 책들을 오감으로 향유할 수 있는 서점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강조를 해 보고 싶다. 오로지 책과 서점을 통해서만 건강한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다고, 미래(인공지능, 하루 앱)가 아닌 과거(책, 서점)가 현재를 구원할 수 있다고, 그러므로 이 소설에 ‘강’이 부여된 것은 필연적이었다고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한때 이현이었음은 안 비밀이다.
자, 스마트폰과 쇼츠에 중독된 이들이여, 신을 신고 집을 나서자. 동네책방을 찾아 구원을 이루자.
#빚은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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