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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_’모리스 블랑쇼의 중성과 글쓰기, 역동적 파노라마’를 읽고

경계는 실재하는가

모리스 블랑쇼에 대한 이 짧은 소개글을 읽고 저자인 김성하라는 사람이 고마웠다. 분명히 쉬운 상대가 아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한 모리스 블랑쇼를 자기만의 언어로 쉽게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2차 저작물의 한계는 원철학자의 여과된 사상을 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글이라면 나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수용하기를 선택할 것이다. 다른 소개글을 쓴 다른 저자들은 마치 이 거대한 사상을 어떻게 20-30페이지 안에, 그것도 철학 입문자의 수준에 맞춰 쓸 수 있겠냐는 식으로 처음부터 불가능성을 전제한 채 약간씩은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난해한 단어들과 철학책만의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문장들을 함부로 남발하는데 반하여, 김성하의 글에서는 전혀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모리스 블랑쇼가 나는 더 궁금해지고, 따로 시간을 내어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어떤 철학자를 처음에 어떻게 누구를 통해 접하느냐에 따라 그 철학자에 대한 인상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다시 하게 된다. 

저자는 모리스 블랑쇼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철학하다'와 '사유하다'를 구별한 철학자였다고. 어떤 명확하고 논리 정연한 언어에 기반을 두고 개념을 제시하는 행위가 '철학하다'라면, 경험을 사유하고 그 사유를 다시 경험하면서 그 반복의 과정을 글쓰기로 보여주는 행위가 '사유하다'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헤겔을 비롯한 블랑쇼 이전의 서양 철학자들이 전자에 해당된다면, 블랑쇼는 후자에 속한다. 그는 철학하지 않고 사유한 사람이었다.  

철학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을 구별하는 건 말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중성'이다. 중성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하고 애매모호한 것도 아니고,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인 것도 아니며,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으며 둘이 섞인 것일 수도 있고 공통된 것일 수도 있으며 두 가지 이상이 서로 소통하면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긴장과 역동적인 관계가 살아있는 상태이다. 즉 불분명하고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말하자면 책상 위에서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분법을 비롯한 깔끔한 경계가 돋보이는 상태가 아닌, 혼돈이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상태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은 당연히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모리스 블랑쇼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한 사람이 아닌, 일상의 경험을 그대로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고 글쓰기로 옮기는 과정을 지속한 예술가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식의 이해를 하고 난 이후에도 사실 나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중성'적인 상태로 내몰렸다. 어쩌면 이런 상태야말로 모리스 블랑쇼에 대한 제대로 된 독법일지도 모르겠다.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철학하기가 이루어놓은 깔끔한 개념들과 정리들이 가지고 있는 명확한 경계들이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적 삶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고 적용되고 있는지 따져보게 된다. 그 경계들이 과연 실재하는가 묻게 된다. 그리고 삶과 분리된 철학하기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까지 다시 하게 된다. 삶과 철학의 경계를 허물고 개념으로 정리하기보다 다시 묻고, 우리 인간은 거기에서 발생한 결과를 기반으로 다시 묻고 답하는 역동적인, 그러나 최종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 내던져진 존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무언가를 정리하고픈 마음, 어떤 보기 좋은 공식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픈 욕망 등을 떠올리며 모리스 블랑쇼의 사유와 그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1. 장 폴 사르트르, 타자를 발견하다: https://rtmodel.tistory.com/2233
2. 몸과 살, 그리고 세계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 https://rtmodel.tistory.com/2240
3. 엠마뉘엘 레비나스, 향유에서 욕망으로: https://rtmodel.tistory.com/2251
4. 모리스 블랑쇼의 중성과 글쓰기, 역동적 파노라마: https://rtmodel.tistory.com/2260

#동녘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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