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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나 (2).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3:00

조금은 꼰대스러운 인생 선배의 얘기나 선생님의 진심 어린 조언, 그리고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노하우가 담긴 책이나 강연을 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없이 교만해질 때가 있었다. 당연히 겉으론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무래도 거짓은 한계가 있는 법이고 교만은 풍선 안에 있는 가시 많은 장미와도 같은 것이었다.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을 지혜롭게(?) 과시하면서 모른 척해주는 연극과도 같은, 그 은밀한 우월감에 도취된 나의 가식적인 배려는 그저 유치찬란한 교만함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가진 복음이 한낱 인간의 사유물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지식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 이 전염성 강한 문장에, 본 뜻과 다르게, 난 심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도, 석가도, 공자도, 모두 "예수를 몰라 지옥에 떨어졌을 헛똑똑한 인간" 내지는 "결국 자기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남들까지 허황된 지식으로 물들여서 물귀신처럼 같이 죽자고 하는 인간, 사탄의 앞잡이" 정도의 의미 이상이 내겐 될 수 없었다. 바울도 고백했던 최고의 지식,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아는 지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지식을 가졌으니 그 외의 모든 지식은 덜 깨달음의 증거요, 가짜요,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묘한 착각 속에 난 오랫동안, 영적 안테나까지 잠길 정도로 침잠해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내 몸과 마음 속에서 진행되어 온 합리화 과정은 효과 좋은 방부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착각과 오해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그 착각과 오해의 매트릭스 안에 있었던 10년이란 세월에서 빠져 나오게 된 건 미국에 와서 시련을 겪으면서였다.


결국 내 일상적인 삶 가운데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그것이야말로 배설물이다. 예수를 알았다고 해서 다른 모든 지식을 우습게 여긴다면, 그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다른 신보다 더 강하고 센 신이라고 믿는 수준과 다를 바 없다. 예수가 최고 지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다른 지식을 몰라도 된다거나 알면 부정 타는 것처럼 여긴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다른 지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믿거나 설사 있다 하더라도 만에 하나 최고가 아니었다는 것이 차후에 증명이 될까 두려워하는 믿음의 수준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그렇게 코웃음 쳤던 사람들의 글을 읽고 공감하고 감동하고 배우는 것이 요즈음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제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조금 생기는 것 같고, 그것이 최고 지식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느낄 수 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알고 보니 다른 지식에도 깊이 묻어 있다. 상관없는 관계가 아니다. 추상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거기서도, 삶의 처절한 바닥에서도 분명하고 현실적으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지식을 섭렵하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묽어지지 않고 더욱 짙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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