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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내가 만나 본 성공한 이들의 조언은 공통점을 가진다.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숨겨졌으나 공통된 한 단어를 꼽는다면, '자아'이다. 교회 안에서도 나는 자신의 무용담에 불과한 성공담을 간증이라는 옷을 입혀 발표하는, 굉장한 능력의 '겸손한?' '천재?'도 여러 명 만나봤다. 그들은 이미 사람들이 자기를 대단하게 볼 거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 한분만 높임을 받아야 한다는 기독교의 관점을 의식해서 그런지, 그들은 한결같이 '겸손'하게 보이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그들의 어줍짢은 시도는 오히려 그들의 자기애를 더욱 풍족하게 만족시키는 결과만 낳을 뿐이었다.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마치 주제문처럼 말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면 거기엔 하나님이 전혀 없었다. 옷을 갈아 입히려면 속옷부터 제대로 해야지, 마치 외투만 갈아 입혀놓고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기꾼과 다를 게 없었다. 언젠간 한번 직접 물어본 적도 있다. 본인이 다 하신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말씀하시냐고 말이다. 그런데 당사자는 의외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주 인자한 얼굴 표정을 지으면서 곧바로 대답을 했다. 하나님이 없다면 모든 게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이다. 다 하나님이 길을 터주셔서 큰 어려움 없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렇다면 성공하지 못한 하나님 자녀들은 뭐냐고 되물었지만, 내 불만 섞인 의도를 파악했는지 그분은 조금 어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피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겸손’을 개인적인 수준에서 끝내지 않고, 일반화시키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나름의 또 다른 겸손의 방법은 바로 누구라도 자기처럼 간절히 바라고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명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자기가 특별해서 성공했던 게 아니라 특별히 원하고 노력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해서 상을 주셨다는 논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으며 ㅂㄱㅎ 503의 ‘신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정말 너무 한다 싶었다.
자신의 겸손을 내세우기 위해 하나님을 높이는 방법이 과연 참 겸손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목적이 오히려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품화된 겸손은 교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면 바른 겸손이란 무엇일까? 낮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공으로 인해 높아진 자신을 인정하고 그걸 자기의 거짓된 의지로 낮추려는, 마치 겸손하려고 노력한다는 그 모습을 보여주려는 고단수의 잘난척처럼, 가련한 의도가 아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겸손을 말하기에는 어긋난다. 남들과 비교해서 뭔가 높은 것 같다고 여기는 것부터가 잘못된 시작인 것이다. 인간은 모두 도긴개긴 (aka 도찐개찐)이라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의 시작이지 않을까 한다. 성공으로 높아짐을 느끼게 되거나 인정하게 될 때 우리 안에 내재된 원죄는 발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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