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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드럼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2. 17. 10:52

드럼으로 예배 찬양을 섬기고 있고, 자유주의적으로 사유하기를 좋아하지만, 아무리 봐도 깊숙이 각인된 보수적인 신앙의 뿌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세상과 자본주의 논리를 전제로 한 성공지향적인 가치관에서 겨우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하나님나라 가치관에 점점 눈을 떠 가고 있는 한 기독교인으로서 드럼에 대해 뒤늦게 숟가락 하나 더 얹어보고자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드럼은 예배에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불연속적이었지만, 내가 20년 가까이 교회에서 드럼으로 섬기면서 늘 마음에 담는 기도가 있다. 드럼이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필요 없는 감정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나 하나님만 빠진 느낌적 느낌에 빠지는 일이 절대 생기지 않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드럼이 절대 곡 표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드럼 소리를 들으면, 귀가 있는 인간이라면 본능적인 충동을 느낀다. 멜로디가 없는 단순한 북소리. 쿵 쿵 쿵 쿵. 둥 둥 둥 둥. 반복적인 울림은 인간의 의식을 넘어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종종 의식을 관장하기까지도 한다. 사로잡힐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베이스기타 소리와 함께 낮은 음에서 반복적인 울림을 듣게 되면, 거기다 음향 시설까지 빵빵하다면, 그 시너지 효과에 의해 마음이 전혀 콩밭에 가 있는 사람 빼고는 대부분 감정이 요동친다. 가사에 예수가 들어 있든 없든 별 상관이 없다. 그저 둥 둥 둥 둥. 거기에 그 어떤 단어를 집어 넣어도 사람들은 반복되는 음과 반복되는 단어에 각인이 된다. 반복적인 북소리, 반복적인 단어, 그리고 반복적인 멜로디까지 더하게 되면 무아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본인의 마음이 간절할 때면 그 효과는 가히 놀라울 수준일 것이다.


인간이 감정을 가진 동물이고 그 감정에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 그리 나쁠 것 없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는 날지라도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충동질을 '은혜'라는 단어와 동격으로 간주할 때 나도 모르게 속에서 뒤틀림이 일어남을 느낀다. 그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격한 감정의 몰입으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이 은혜를 왕창 쏟아 부어주셨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좋다. 그것조차도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니, 그런 식으로 은혜를 받았다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다시 그 은혜를 받고자 노력한다. 찬양 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에 몰입하길 원한다. 만약 그 시간에 새신자가 옆자리로 와서 뭔가 묻는다면 눈을 흘길 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은혜 받아야 하니까.


그렇다. 그런 식으로 은혜 받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뭔가 특별한 은혜를 받는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일반화하기에 이른다. 그런 경험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 그 착각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정죄,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영적인 교만.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


드럼을 치는 당사자로서 찬양이 끝나고 예배가 끝난 뒤 항상 내게 다가와서 너무 좋았다고, 너무 은혜 받았다고 말씀해 주시는 교인들이 그 동안 정말 많았다. 초창기 때는 마치 내가 은혜의 공급자라도 되는 것 같은 묘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고 드럼으로 강약 조절을 하며 곡의 절정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기술이 은혜의 기원인 것 같다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웃기는 짓거리다.


드럼은 없어도 된다. 그러나 만약 교회가 드럼을 포함시켜 찬양을 한다면 굳이 드럼을 제거하자고 주장할 이유도 없다. 사실 드럼이 위에 언급한 것처럼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킬 확률이 아주 높긴 하지만, 적절한 드럼의 사용이 찬양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새벽 기도회 때 아무런 반주 없이 부르는 찬송과 피아노 반주가 들어간 찬송을 비교해 보라. 차이를 누구라도 느낄 것이다. 피아노가 들어갔다고 해서 그것을 악하다거나 악의 소굴로 유혹한다고는 요즘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기타나, 전자기타, 베이스기타,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그리고 드럼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걸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드럼에 대한 기존의 극보수적인 사상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만드는 주범일지도 모르겠다. 있다면 함께, 없다면 없이 찬양하면 되는 것이다. 단 마음을 다해서 말이다. 그것 또한 예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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