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작년 말 아내에게 선물 받은 헤세 선집 중 네 번째 책의 감상문입니다.**


성장 - 시인에서 인간으로.


헤르만 헤세 저, '페터 카멘친트'를 읽고.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쉬지 않고 일한다. 끊임없이 들어주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자연은 찾는 이에게 훌륭한 상담가인 것이다. 페터를 붙잡아 주었던 존재도 사람이 아니었다. 장엄하게 늘어선 산맥과 첨탑처럼 솟아오른 산봉우리, 그리고 그 위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구름이었다. 자연은 어머니의 품처럼 그에게 안식을 주었고, 난해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었으며, 잠자고 있던 그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는 선생이었다. 변함 없지만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자연은 그렇게 페터를 맞이했고 또 성장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사랑했던 어머니도, 첫 우정으로 성큼 다가왔었던 리하르트도, 수줍어하는 듯 큼직한 눈을 가졌던 작고 연약한 영혼의 아그네스도, 그리고 그에게 진정한 사랑과 미덕을 가르쳐주었던 불구자 보피도 모두 짧은 생을 뒤로 하고 페터를 떠나 죽음의 세계로 먼저 가버렸다. 또한 사랑의 불을 지펴 그의 마음을 후벼 파듯 아프게 했던 에르미니아 알리에티도, 또 엘리자베트도 페터를 스쳐 지나가며 각기 제 갈 길을 갔다. 그러나 자연만은 변치 않고 남았다. 사랑도 죽음도 그를 지나쳐갔지만, 자연만은 언제 찾아가도 가만히 그의 말을 들어주었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어루만져 주었으며, 그에게 따스한 말을 건네주었다. 지친 그의 영혼은 자연 속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페터는 스위스 알프스 산자락에 놓인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의 성은 카멘친트, 마을 사람의 대부분이 가진 성이기도 하다. 가까운 친척과 먼 친척의 구분만이 있을 뿐인 그 작은 마을 니미콘은 식물의 한 군락처럼 대대로 자연 속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페터에게 니미콘의 순리를 거스르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쩌다가 쓰게 된 편지 한 통 때문에 마을 수도원 신부님의 권유를 받아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김나지움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있어 산골 소년의 운명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자신도 몰랐던 글쓰기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의 일부로써 그를 형성했던 자연의 풍성함은 페터를 작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은 그를 시인이 되게 했다.


니미콘을 떠나 도시에서 대학도 다니고, 비록 성공하진 못했으나 사랑에도 빠져보고, 여행도 수없이 다녀보고, 졸업하여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보았지만, 그의 자연에 대한 동경과 사랑, 그리고 애찬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러나 페터에게 부족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지식의 부재였다. 유달랐던 자연에 대한 강한 애착이 남긴 뜻하지 않았던 효과였다.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나서부터 그의 시상을 담는 메모장과 기억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그의 연구 대상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보피였다.


페터도 반신불수의 꼽추, 보피를 첫 대면부터 좋아하진 않았다. 처음에는 여느 사람들처럼 그를 흉측하고 불쾌하고 거북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어느 날, 그를 혼자 친구의 집에 놓아두고 친구 가족과 함께 소풍을 나갔을 때였다. 그가 늘 연구하며 사랑해 마지 않았던, 그래서 이웃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해 주었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섬광처럼 생각이 났고, 그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신의 목소리로 들렸다. 페터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바로 옆에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사람 하나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여태껏 무엇 때문에 성자의 삶을 연구하고 그의 사랑의 노래들을 부르고 외우고 또 사람들에게 가르쳐왔는지, 떠밀려오는 자괴감과 죄책감으로 자신의 모순됨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한달음에 자물쇠가 걸린 친구의 집으로 달려갔다.


보피는 선천성 불구자였지만 사람과 자연, 인생과 세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은 지혜로웠으며 그의 영혼은 아름다웠다. 페터의 부족했던 부분 (사람에 대한 지식)이 가족이나 친구, 사랑했던 여인이 아닌, 하마터면 쉽게 스쳐 지나갈뻔했던 불구자 보피로부터 채워지게 된 것이었다. 사랑의 실천과 지혜의 나눔을 통해 마침내 사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보피의 죽음을 지켜보며 가슴을 또 한번 쓸어 내렸지만,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고향에 돌아온 페터는 또 다시 자연 속에서 치유함을 받는다. 그리고 한층 성장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책상 서랍에는 필생의 역작을 쓸 자료들이 준비가 되었지만, 그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 바로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라고 고백한다. 실로 자연은 그를 치유하여 작가나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더불어 사랑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까지도 깨닫게 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페터는 시인에서 인간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친트'는 '게르트루트'처럼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소설이다. 그러나 '게르트루트'와는 달리 이번에는 헤세의 자아가 두 개로 분열되지 않고 주인공인 페터 카멘친트에게 온전히 들어가 있다. 헤세를 작가의 대열에 합류시킨 첫 번째 소설이었기 때문인지, 나는 내가 읽어온 헤세의 소설 중 가장 가미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헤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페터는 상류층도 아니었고, 극빈곤층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는 천재도 아니었으며, 바보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도덕적으로 완전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지도 않았다. 그는 평범했다. 페터의 성장과정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과 별 다르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일까?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일상의 조각들이 기술된 이 책에서 난 나의 일상을 보았으며, 작은 굴곡을 지나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성장을 목도할 수 있었다. 그가 하는 생각과 그가 하는 행동들이 나의 그것들과 겹쳐졌다. 책을 덮고 나니, 나도 페터처럼 한 걸음 더 앞으로 전진한 것 같은 느낌이고, 그에게 사람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던 사랑과 지혜라는 소중한 열매를 내가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스위스의 알프스 산자락에서 말이다. 덕분에 내가 어릴 적 올랐던 동산은 알프스 산맥을 이루는 하나의 봉우리가 되었고, 내가 메뚜기와 잠자리, 하늘소와 사슴벌레, 가재와 올챙이를 잡던 초원과 계곡은 돌연 스위스의 그것이 되었다.


인생은 성공이 아닌 성장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성장은 성공과 실패를 모두 포괄한다. 성공도 실패도 성장을 이루는 요소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성공을 거뒀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성장을 이뤘는지가 더 중요한 가치이지 않을까 한다. 햇살이 산을 비출 때 생기는 음영에 의해 산이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듯, 인생도 굴곡이 있기 때문에 더욱 풍성하고 윤택해지는 게 아닐까 한다.


인생의 절반이 지나간다. 나이 마흔이 넘으니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것만 같고, 익숙히 알았던 것들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뒤에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하고는 뛸듯이 기뻐한다. 여유가 생기고 조금은 지혜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페터는 작가요 시인이었지만, 그리고 나이가 들어 고향에 돌아왔지만, 정작 그의 역작은 책에서는 끝내 완성, 아니 시작도 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인생은 아직 열매를 맺기에는 무르익지 않았다.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 열매를 맺기 위해 자료들을 모으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과학자에서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페터 카멘친트', 내겐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어릴 적 자연에서 뛰어 놀던 때가 몹시도 그립다.


#김영웅의책과일상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