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회권 목사님의 ‘모세오경’을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어제 밤 창세기 15장까지 읽었네요. 책으로는 200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전체의 1/7정도 읽었네요). 곱씹으며 묵상하며 상상하며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참 재밌습니다. 이럴 땐 제가 신학자가 아닌 일반 신자라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각인되어질 수도 있는 신학 사상에 제한받지 않고,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도 있으니까요. 모두 알다시피 창세기 3-11장은 인간의 창조 후 타락, 그리고 증가되어지는 인간의 죄악이 시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들어서야 아브라함의 등장으로 드디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지요. 인간의 죄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단상을 글로 적어봤습니다. 만약 신학적으로 교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주저마시고 댓글 달아주셔요. 여기 글을 올리는 이유는 더 풍성히 배우기 위함이니까요.**
죄: 관계의 파괴.
죄는 관계를 파괴한다. 죄로 인하여 경외심은 순식간에 회피심과 공포심으로 변질되었다. 눈이 밝아진 후 벗은 걸 알게 되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체를 가린 아담과 하와가 취한 첫 행동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피해 나무 뒤로 숨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외했던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피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자신를 모든 것의 중심에 놓는 것을 나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들은 원죄라고 해석한다.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심지어 교육받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서도 발견되어 가끔 엄마아빠들을 섬뜩하게 만드는 이것, 원죄의 흔적, 바로 우리들이 이기심과 교만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이기적이거나 교만하다고 해서 가장 강한 것은 아니다. 더 강한 존재가 있음을 인정할 줄도 안다. 다만, 그런 존재를 대면하게 되었을 땐 두려움을 느끼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게 된다. 그리고 제거할 수 있다면 그것까지도 고려한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처럼 육을 가지셨었더라면, 어쩌면 인류의 첫 살인자가 가인보다 먼저 (아담이나 하와) 출현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말도 안되지만 섬뜩한 상상까지도 해본다.
수직적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수평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죄로 인해 파괴되었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했다. 깨어졌던 두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율법의 존재 이유였다. 이것은 예수가 전한 하나님나라와 바울이 말한 칭의, 이를 통칭한 예수가 중심된 복음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관계가 회복된 곳,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 즉 하나님나라의 중심을 관통한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들어온 죄가 한 사람으로 인하여 사하여지게 되었지만, 그것은 의롭다고 칭해져서 죄 문제로 인해 심판 받지 않을 뿐이지, 소위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람들도 원죄의 발현을 일상에서 매일 경험한다. 난 이미 랭던 길키의 '산둥수용소'에서 이를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죄인을 받아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죄인이지만 의인으로 쳐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을 넘어 모든 인간이 원죄의 흔적에서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충분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결국은 도긴개긴이란 명제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복음은 사적인 영역에서 벗어나기도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행여 자기만 죄인인 것처럼, 겸손을 가장하여 마치 모든 것에 항복 (surrender)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살면서 간혹 목격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다분히 개인 경건과 자기 비우기에만 전념하고 공적인 복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솔직히 이런 부류의 교인들이 어쩌면 복음의 공공성에 가장 유해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죄라는 것을 깨달을 때, 그리고 그 죄 문제를 해결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결코 우리는 개인적인 영역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언급했다시피 죄는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개인의 파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린 너무나도 쉽게 죄의 삯은 사망이란 말로부터 죄로 인한 죄인의 개인적 죽음에만 급급해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죄의 타겟은 개인이라기 보단 관계다. 적어도 둘 이상의 관계.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시어 죄문제를 사하여 주신 것은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하나님나라는 세상이라는 난파선에서 구조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된 곳이다. 나아가,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려야 할 하나님나라 역시 개인 구원론이나 개인 경건, 자기 비움에만 연연하면 안 될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존재, 정의롭고 서로 사랑하며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으로 우리가 거듭나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