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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얍복 강가로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2. 14. 02:38

**김회권 목사님의 ‘모세오경’을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어제 밤 창세기 32장까지 읽었네요. 책으로는 350페이지를 지나갑니다. 오늘은 상상의 나래를 펴서 얍복 강가로 가봅니다.**


얍복 강가로.


얍복 강가에서 야곱이 맞닥뜨린 건 그에게 씨름을 걸어온 어떤 사람 (야곱에게 축복을 줄 수 있던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자나 천사로 이해함)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자신의 옛 자아와의 만남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숙명적인 만남이 얍복 강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야곱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에서가 자기를 죽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먼저 자신이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 만한 일을 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20년 만에 찾아온 불청객과도 같은 과거의 죄책감에 야곱은 단박에 눌려버렸고, 그래서 형의 보복이 심히 두려웠다. 그는 마침 자신을 쫓아왔던 라반을 길르앗 산에서 만나 많은 가족과 어마어마한 재산을 곤고히 확보한 뒤 한숨을 돌리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교묘하고 비열하며 권위적이기까지 했던 라반의 착취와 사기 행각으로부터 신원해 주신 결과였다. 라반과도 평화롭게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기에 야곱은 이제 새로운 인생의 문 앞에 서있었다. 나름대로 번영을 맞이했던 밧단아람에서의 2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고향에서 그것들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이 때만 해도 아마 야곱의 발걸음이 가볍고 유쾌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야곱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얍복 강가에 이른 야곱에게 솔직한 자신의 모습과 먼저 대면하도록 만드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밧단아람에서의 20년의 세월과는 별개였다. 더 근원적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 혼자만 아는 과거의 그 사건을 다시 소환해내셨고, 야곱으로 하여금 그것을 정면으로 맞서고 넘어서게 하셨다. 지혜라고 하기엔 부족하며, 그렇다고 사기라고 하기엔 어감이 강한 느낌을 주는 인간적 능력 (권모술수? 인본주의? 잔꾀?)으로 점철된 지난 날 자신의 모습과 비로소 정면승부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인간적인 능력자로서의 경력을 접고 하나님의 지팡이에 의지하는 절름발이가 되는 과정이 바로 얍복 강가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말이지 않나 싶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을 원하셨던 것이다.


김회권 목사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손 안에서 징계와 연단을 거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대표적 성경 인물이 야곱'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성장과 성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사람도 쓰시지만, 한 사람을 쓰시기 위해서 친히 준비시키기도 하신다. 준비된 사람만 쓰시지도 않고, 그렇다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만 쓰시지도 않는 하나님. 직접 준비시키시기도 하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곧바로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하게 하시며 쓰기도 하시는 하나님. 어떤 패턴이나 공식으로 절대 갇히지 않는 하나님. 결코 다 알 수 없을 하나님을 난 오늘도 조금이나마 더 알아가길 원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룰 크고 작은 일상의 조각들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인격이 성숙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길 소망한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의 변화가 매일 나에게도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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