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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림.
하루 종일 산은 구름 속에 잠겨있다. 가끔씩 드러나는 뾰족한 봉우리에서도 예리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부터 날씨에 이리도 민감했던가. 습기를 듬뿍 먹은 스웨터처럼 오늘은 내 몸도 천근만근이다. 보스가 걱정됐는지 "Are you overwhelmed? " 하고 묻는다. 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A little bit." 물론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그저 어른처럼 적당한 대답을 했을 뿐이다. 일이 많다. 버겁다. 부담이 된다.
일부러 길을 걸었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싫진 않았다. 마치 갑자기 훌쩍 커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넓어진 건지, 흐려진 건지 구분이 잘 안 간다. 오늘은 모든 게 뿌옇다.
책상 앞에 앉아 온종일 자료를 분석했다. 별 이유는 없다. 일이 밀려있고, 늘상 그 자리에 앉으면 그래야 하니까 집중했을 뿐이다. 이젠 흥분 없이도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집중할 줄도 알고, 어떡하면 프로그레스가 생기는지도 안다. 오늘 같은 날이면, 몸이 두 개라면 진짜 놀랄만한 일을 해냈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몸이 하나라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하루가 이렇게 간다. 전철에 몸을 싣고 함께 흔들리며 목적지로 간다. 별 이유는 없다. 그래야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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