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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쿱 (scoop).
이 사람 저 사람 거치다가 2년여 전부터 내 손에 떨어져 있던 프로젝트가 있다. 이미 새롭게 밝힐 건 크게 없다고 잠정적인 결론이 나있었고, 작은 논문이라도 내는 것이 아무것도 내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 사이드로 진행해서 간단하게라도 정리하자고 보스가 내게 준 것이다.
오늘, 이틀 후에 있을 학과 전체 미팅에서 이 프로젝트를 발표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거의 동일한 마우스 모델과 스토리로 이미 3개월 전에 JCI에 퍼블리쉬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보스는 존경할만한 성품의 소유자다. 긍정적이다. 스쿱당한 충격도 잠시, 이내 계획 구상에 몰입했다. 잃은 것은 이미 잃은 것. 아쉬움을 증폭시킬 이유는 없다. 이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을 극대화하자고 말하며, 혹시라도 떨어져 있을 내 사기를 북돋아주려고 했다. 난 어차피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던 프로젝트였기에 별 실망할 것도 없었지만, 날 위로해주려고 하는 보스의 눈빛에는 말과는 달리 실망감이 깊게 배여있었다. 그때였다. 스쿱당한 논문 때문이 아닌 보스의 눈빛 때문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아, 좀 더 열심히 해서 내가 이 분을 도와야겠구나!'
리더는 일을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앞장서는 위치에 있지만, 그 목적을 위해서는 먼저 팀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자책하게 만들거나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식으로는 결코 팀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자발적인 마음이 생기도록 이끄는 기술. 난 이것을 리더십이라 부르고 싶다. 한 수 배웠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배움. 보스는 오늘 논문 하나 희생 당했지만, 사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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