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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달팽이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4. 6. 01:53


달팽이.


가끔 내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이 낯설어지고,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질 때가 있다. 오늘도 저기 먼 곳은 안개에 잠겨있다. 그나마 드문드문 희미한 형체를 보여주던 산도 오늘은 말끔히 종적을 감추었다. 만약 오늘 내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다면, 안개가 걷힌 후 곧 드러나게 될 산의 존재에 소스라칠지도 모른다. 있으나 숨겨진 것들. 누군가에겐 충격으로, 또 누군가에겐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반면, 숨겨졌지만 존재한다는 걸 아는 이에게 그것은 답답함을 안겨주고 기다림을 요구한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해도 산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의심하는 자와 함께 안개를 뚫고 직접 저 산이 보일만큼 가까이 가보지 않는 한. 다만 믿을 뿐이다.


하지만 산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내 아들이 산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면, 난 힘을 다하여 내게 남아있는 산에 대한 기억과 체험을 얘기해줄 것이다. 내겐 기억과 체험인 산의 존재가 아들에게 이르러선 믿음이 된다.


눈을 들어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회색이다. 하늘과 대기가 비로소 하나가 됐다. 그렇다. 이 알 수 없고 불투명한 세상 살이, 그리고 이를 더욱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타향살이에서 내게 필요한 건 믿음이다. 느리더라도, 밟힐지도 모르더라도 전진한다. 달팽이처럼.


**출근길, 하마터면 내게 밟힐뻔했던 달팽이. 당당하게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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