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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여백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4. 10. 06:54


여백.


눈을 감고 현악기의 솔로 연주를 듣고 있으면, 연주자가 짚어내는 정확한 음이나 박자 보단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이 얼마나 부드럽고 안정감 있게 처리되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긴박한 위기 부분, 홀로 높은 음을 마음껏 뽐내는 절정 부분, 그리고 피날레를 향하여 끝까지 믿음직스럽게 전진하는 부분까지 음의 여백은 그 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숨은 공신이다. 화려한 멜로디만이 기억에 남는 것도 여백의 자연스러운 처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았어도 무시하곤 한다. 모든 박수는 화려함의 독차지다. 여백은 빈 공간이라는 의미처럼 인정 받는 면에서도 비어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화려한 멜로디가 되려고만 한다면, 그 멜로디를 조용히 뒷받침하는 여백의 미를 알려주고 싶다. 단, 미리 얘기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은 물론 기억에서조차 무시 당할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말할 것이다. 하나 뿐인 멜로디가 되기보단 그 멜로디를 도와 전체 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멋진 여백이 되자고. 음과 음은 불연속적일 수밖에 없으며, 바로 그 틈새가 우리들이 존재할 부분이라고. 알고보면 곡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지도 모르는 부분이라고. 나누고 돕고 남을 향한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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