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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리.
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 그리고 어두워지며 비로소 뚜렷해지는 귀뚜라미 소리가 잘 들린다는 것은, 그곳에 침묵이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에 저항하며 계속해서 침묵하지 않았던 ‘소리’가 침묵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자연의 작지만 지속되고 있는 소리들. 내겐 평화의 소리다.
멀리 갈 필요 없다. 방 안에서 청명하게 들려오는 시계 소리, 집 밖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는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나 기차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나는 침묵을 맛보며 고독에 잠긴다. 우리가 정의하는 침묵과 평화는 진공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어떤 외부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을만큼 조용한 곳에서도 우린 좀 더 커진 우리의 맥박 소리를 듣는다.
아내의 잔소리, 아들의 칭얼거리는 소리, 여러 사람들의 불평 소리, 누군가는 기쁜 소식에, 또 누군가는 슬픈 소식에 요동하여 지르는 함성 소리… 나의 일상을 이루는 소리들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이 평범하고 소소한 소리들. 아아, 난 존재하지도 않을 이론적인 평화를 바래왔던 건 아닐까. 저기 구름 가운데 어딘가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평화.
함께 한다는 것은 모든 역경이 제거된 장소가 아닌, 바로 우리들이 발을 딛고 있는 이 땅, 수많은 소리들이 모여 커다란 일상을 이루는 이 세상에서만이 그 가치를 지닌다. 평화는 함께 함을 알고,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후손에게도 전달해주는 그 작은 몸부림 속에 있다. 우리의 소란스런 그 몸부림의 소리들이 어쩌면 그분이 듣고 계신 침묵의 증거, 곧 평화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나를 모든 것들의 중심에 두는 천동설을 믿어왔던 것이다. 나를 잊어버리는 해탈이 아닌, 나를 넘어서서 그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획득하는 것.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을 인정하고 그것에 맞추어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 바로 겸손의 다른 말이고 해방의 다른 말일 것이다.
혹시 당신은 아직 당신만의 천동설에 매여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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