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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인가, 돌연변이인가?
유진 피터슨도 간파했듯이, 영성훈련의 기본 조건 중 하나가 노동이라면, 그리고 세상 속 노동은 늘 어려움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사실로 받아 들인다면, 노동하지 않고, 어려움에 처해보지 않고 영성을 기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배에 기름이 차고, 부유한 자들의 많은 헌금에 둘러싸여 대접 받으며 제왕적 목회현장에서 흘러나오는 목사의 설교에서는 아무런 울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책상 위에 잘 놓인 질 좋은 가죽 성경책에서 나오는 설교보단, 차라리 난 시장 한 복판에서 생선 비린내 묻은 살아있는 설교가 듣고 싶다. 현장을 거세시킨 설교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성경에서 교훈 찾기에 급급하고, 그것들을 실천하자고 제안하는 정도의 설교는 이젠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잉여물에 불과하다. 난 정말이지, 진정한 영성을 실천한다는 사람의 삶이 어떻게 그렇게 기름이 낄 정도로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목회자들을 대할 때면, 난 그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이젠 감조차 안잡힌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고 하면서도 서민들의 삶이 어떤지조차 무지한 그들은, 선거 전 시장에 나와 상인들이 파는 오뎅 하나 먹어주는 시늉하며 사진이나 찍어가는 정치인들과 뭐가 다른 건지 대답할 수 없다.
그들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교회를 위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정의하는 교회는 과연 어떤 곳일까? 어찌 자신의 높아져가는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확장시켜 나가면서도, 동시에 거룩과 희년을 눈 똑바로 뜨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일까? 당신들은 두 아비를 두면서도 두 아비에게 모두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역사적으로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슈퍼히어로들인가, 아니면 희대의 돌연변이들인가? 대체 당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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