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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일까요, 고등학교일까요? 어쩌면 국민학교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전 아직도 모릅니다. 다만, 부모님의 최종 학력을 기입하라는 지시사항이 떨어질 때마다 저는 아빠는 중학교, 엄마는 고등학교라고 썼습니다. 왜 그런 항목이 존재했는지 머리가 커버린 지금에 와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그 란을 기입할 때면 늘 저는 위축되어 그 날 하루, 아니 며칠은 우울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부모님께 여쭤보면 될 일인데, 전 한 번도 그러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마음대로 적은 그 사실이 진짜로 드러나거나, 아니면 그보다 한 단계 더 낮게 적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괜한 상처를 부모님께 드릴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사실 그 당시 저로선 나름 객관성을 띠면서 최대한으로 학력을 높게 적은 거였거든요. 그래야만 될 것 같았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하신 부모님께선 제게 공부를 가르쳐 주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공부하라고 다그치시지도 않으셨어요. 바르고 건강하게만 자라길 원하셨지요. 아버지가 한전에서 청원경찰로 일하시기 시작했던 건 고등학교까지 자녀의 등록금이 지원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했을지, 그게 몇 푼이라고 직업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충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부모님의 마음만은 어린 제 마음에 전달이 되었었어요. 단칸방에 네 가족이 살면서도 전 그다지 불행하다고는 여기지 않았답니다. 중요한 건 진심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부모님께선 삶 전체로 보여주셨으니까요. 


그런 환경에서 제가 학업에서 가장 많이 해본 등수가 1등이었다는 건 부모님께나 제게 어떤 의미였었을지 짐작이 충분히 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천재라기보다는 복덩어리 같은 존재였었지요. 환경과 무관한 저의 성적은 부모님께는 자랑거리였고, 제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제 이름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 만약 제 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지루하리만큼 전형적인 아름다운 성장기로 소개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겐 문제가 있었어요. '독선'과 '독단'은 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답니다. 그 이름은  '영웅'이라는,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저의 공식 이름을 깎아먹고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 같았지요. 


80-90년대의 한국 학교 시스템은 어렸던 제가 느끼기에도 공평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았습니다. 어렸기 때문인지, 저의 자기중심적인 눈에 가려졌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건 잘 몰랐어도 공부 잘 하는 학생이 특별 대우받는 건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저는 그것을 아주 교활하게 잘 이용해 먹었답니다. 조그만 녀석이 벌써 귄위를 이용한 정치의 맛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독단독선적인 저의 캐릭터는 이에 아주 찰떡궁합이었지요. 


한 가지 더 불행스러운 일은 제가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오빠이기도 했어요. 공부 잘 한다는 것은 교회 내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무기는 저를 믿음의 모델로 만들어 주었어요. 믿음과 성적이 각각 원인과 결과로, 보수 장로교인이었던 그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었지요. 지금이야 그것이 기독교가 아닌 무속적이고 이교도적인 기복신앙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땐 상관없었습니다. 관심 받고 사랑 받으며 지원 받는 건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었거든요. 직접 불의를 행할 용기까진 없었지만, 불의함을 구경하고 거기서부터 이윤을 챙겨먹는 맛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포항공대까지 가게 되어 모든 게 시나리오대로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다른 이름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저의 본 이름을 압도하기 시작했지요. 박사과정에 가면서부터  이는 성공지향적인 가치관과 직접 결합하게 됩니다. 이젠 성인으로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가치관은 저를 이 시대의 로마인 미국으로 데려옵니다. 저의 제 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지요.


제가 미국에서 겪은, 가치관의 변화를 동반한 제 2의 인생은 이 글에서 충분히 다 적을 수 없습니다. 페북에서 제 이야기를 목사님과 사모님은 이미 읽으셨겠지만, 사실 그것도 굉장히 많은 것을 줄여서 쓴 것이었거든요. 아무튼 전 미국에 와서 나름의 바닥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전혀 예상할 수조차 없었던 외부적인 요소 때문이었어요. 아니, 어쩌면 저의 다른 이름이 그 외부적 요소로 발현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해석이야 어떻든, 저는 결국 제가 쌓아온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 것만 같았어요. 제가 바라온 엘리트 과학자로서의 성공은 물거품이 되었지요. 


모든 걸 잃어도 괜찮다는 말이 유일한 위로가 될 즈음, 저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아요. 하나님은 그렇게 신비하게 여러 방법으로 절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회복시키셨지요. 성공지향적 가치관에서 하나님나라 가치관으로의 전환, 제게는 회개의 다른 말이었답니다. 바로 돌이킴이었지요. 


제게 일어난 삶의 흔적들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전 저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젠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런 걸 나눌 수 있는 방법은 글이고, 이는 제가 글을 잘 쓰고 싶은 동기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저의 솔직한 꺾임이 누군가에겐 희망의 약속이 될 줄 믿습니다. 제가 예전에 쓴 짧은 글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하나의 무지개가 되길 원하며.


무지개.


무지개는 항상 존재한다. 

다만, 빛이 대기 중 물방울을 만나 꺾일 때 드러날 뿐이다.


우리의 인생은 꺾일 때가 있다. 

누구나 한계를 만나고 겸허해지는 시기를 만나게 된다. 

바로 그때다. 색깔을 내는 시기는.


그렇게 나의 굴절은 무지개가 된다. 

나의 꺾임은 사람들에게 예기치 않은 희망의 약속이 된다.


솔직해지자. 숨기지 말자. 

대기 속 물방울처럼, 빛에 솔직히 반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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