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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축구’에서 엿본 정의.
아무래도 ‘소림축구’의 진미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태극권 골키퍼의 등장과 활약이다. 이 장면은 볼 때마다 진한 감동을 준다.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어제밤도 이 장면을 보며 난 눈물을 흘렸다.
축구계에서의 정치와 경제를 모두 손아귀에 쥐고 있는 악당 감독의 권모술수 때문에 소림축구팀은 심한 부상을 당해서 결국 선수 미달이란 명목하에 실격처리될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태극권을 이용하여 만두를 빚는 ‘아매’라는 여인이 골키퍼를 하겠다고 갑자기 나선다. 이미 상대편의 약물 반칙으로 초인적인 힘을 얻은 선수의 킥에 골키퍼 두 명이 나가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모두들 다 그녀를 말렸다. 그러나 그녀는 믿어달라고 했고 꼭 돕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진정성 있는 고백과 선포는 받아들여졌다.
가장 깊은 심연을 맞닥뜨릴 때 도움은 언제나 외부에서 예측치 못하게 주어지는 법이다. 우리는 이를 기적이라 부른다. 아매의 등장 덕분에 상대편 입장에선 99% 다 이겨놓은 상황이 순식간에 그들의 마지막 웃는 순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녀는 상대편의 살인킥에 실린 모든 힘의 세기를 그대로 살리면서 방향만 바꾸고, 만두 반죽을 빚을 때와 같이 그 강한 힘을 공의 회전력으로 전환시킨 후 증폭시켜 주성치에게 패스했고, 상대편의 반칙 때문에 다리가 성하지 않았던 주성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패스를 공중에서 받아 슛을 날려 1:0 점수를 내며 상대편의 전력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을 등에 업은 불의한 강자의 초인적인 힘이 약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아매의 태극권에 그대로 흡수되어 오히려 엄청난 파괴력의 태극권을 낳게 도와주었고, 그 힘에 자기들이 그대로 당한다는 이 영화 속의 명징한 권선징악의 논리는 약자 편에 서봤던 많은 사람들의 응어리를 해소시켜주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내가 매번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상대편이 박살나는 결론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아매가 골포스트 앞에서 상대 선수의 킥을 부드럽게 받아내어 그 강한 공의 힘을 회전력으로 바꿔 그녀가 평소 일상에서 매일 다루는 만두 반죽처럼 공을 완벽하게 제어하면서 주성치에게 패스하기 전 미소를 지을 때다. 어제도 가슴이 박차오르며 눈물이 났던 장면도 바로 그 때였다. 구별된 자이지만 똑같이 불의가 가득한 일상에서 묵묵히 정의롭게 살아가는 자가 빛나는 그 짧은 순간. 난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는 것외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일상을 돌아본다. 난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ready to go의 전문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걸 갖고 있다면, 비록 그것이 불의한 자에게서 받는 부당한 대우를 격파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정의의 이중잣대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잠자코 현실을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 고통스러울지도 모르는 일상에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언젠간 강자의 자리로 가기 위한 칼을 갈고 있는 약자에 불과한가?
정의와 공의가 살아 숨쉬는 나라는 강자와 약자의 개념이 컨텍스트에 달리 해석되기 때문에 결국은 모든 개체가 평등한 대우를 주고받는 곳일 것이다. 이웃사랑은 공감하고 나누며 정의의 한 잣대를 나를 포함한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원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각자의 장단점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유일 것이다. 더 가진 것을 의지하여 남에게 으시대거나, 더 가지지 못한 것을 이유로 남에게 비굴하게 구는 행위는 모두 이웃사랑과는 무관할 것이라 생각한다.
태극권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만두나 빚고 앉아있냐고 묻는 사람들의 마음 중심에는 동일한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힘이 난무한다. 마찬가지로, 만두를 빚고 있지만 알고보니 태극권 고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중심에도 비슷한 힘의 논리가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녀는 태극권의 고수이고, 만두를 빚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그렇다. 그 둘은 다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나 결과가 될 수 없다. 이를 기독교 용어로 돌려 말하자면, 소위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사회적 지위가 높다거나 돈을 많이 버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우린 얼마나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에 치중하여 아등바등대며 살아왔던가! 아직도 그런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빠져나오라. 빨간 약을 먹을 시간이다.
#김영웅의영화와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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