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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이 쥐어진다. 내심 기다렸지만 뜻밖이었기 때문인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칠판에 쓰기 시작한다. 과감하고 거침없다. 그녀가 써내려 가는 것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통쾌한 저항이다. 숨겨진 천재성의 표출이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당당하고 정확하고 그리고 평화롭게, 그녀는 그 순간 자유를 만끽한다. 날아 오른다. 수직상승의 기류를 타고 내로라하는 백인들의 경탄을 넘어선다.


인종차별은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나사 (NASA) 내부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흑인들은 그들이 가진 능력에 비해 반의 반의 반도 못 미치는 대우는 받는다. 일상 생활 자체가 모욕이고 치욕이다. 일하는 공간, 먹는 공간, 볼 일 보는 공간, 심지어 커피 포트까지 모든 것이 구분, 아니 차별되어 있다. 차별을 하는 백인들의 눈에는 그들이 가증스럽다는 듯한 표정이 얼굴에 "고급스럽게" 감춰져 있고, 차별을 당하는 흑인들의 눈에는 비굴함과 그에 저항하는 기세가 묘하게 섞여 있다. 이미 문화가 되었다. 그래서 그 잘못된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극단적인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마저 백인들의 경찰력에는 그저 풍전등화와도 같다. 결국 별다른 이득 없이 피해와 상처를 도맡는 쪽은 시위 가담자일 뿐이다.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라는 영화를 봤다. 차별의 바다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아 당당히 역사가 되어버린, 실존했던 3명의 흑인 여성 수학자를 다룬 영화다. 영화를 보는 중 백인들의 그 도도한 조소 섞인 표정이 공감되었던 것은, 내가 그나마 미국, 그 중에서도 백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인디애나 주에 거할 때 비슷한 걸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도 흑인은 BLACK이 아니다. COLORED다. 나도 마찬가지로 유색인종이기에 아마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 있었다면 나 역시 그들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내게 한가지 씁쓸했던 건 주인공 3명이 모두 불굴의 의지를 가진 천재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평범한 흑인이 아니라 비범한 흑인이 이뤄낸 쾌거라고 해야 할까. 영화 속에서는 백인들과의 차별을 뚫어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흑인들의 동등하고 평범한 인권 때문이 아니라, 백인들이 가지지 못한 그 소수 흑인들의 비범함 때문으로 그려져 있다. 인종 차별과 평등한 인권 보장에 호소하는 느낌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지만, 조금 삐딱하게 보면 그들의 천재성을 백인들이 이용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저 경계의 선을 뒤로 조금 물리면서, 그 대가로 그들의 천재성을 획득하는. 물론 감독이나 작가의 의도는 나의 삐딱함의 해석이 달갑진 않을 테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내겐 뭐랄까 약간의 찝찝함이 남아 있다. 캐빈 코스트너에게 내가 좀 많은 걸 기대했던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차별의 경계를 손수 몇 가지 무너뜨려 보였지만, 여전히 그들 자신의 진영 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만나 후자가 전자를 이렇다 할 별 이유 없이 이겨버린 역사의 흔적을 난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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